▲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문 대통령은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근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으로 가야 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대통령은 이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우리 정부는 부정부패와 불공정을 혁파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라면서 "권력 적폐 청산을 시작으로 갑질 근절과 불공정 관행 개선, 채용 비리 등 생활 적폐를 일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전날인 15일에도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정부가) 그저 부동산 시장의 안정에 몰두하고, 드러나는 현상에 대응해왔을 뿐"이며 "부동산 불로소득을 통해 자산 불평등을 날로 심화시키고, 우리 사회 불공정의 뿌리가 되어온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는 일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취임 후 줄곧 집값 잡기가 부동산 정책의 전부인 듯 이야기해 온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처음으로 부동산 불로소득과 자산 불평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결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최대 질곡임을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음에도,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1950년의 농지개혁으로 토지소유가 매우 평등한 상태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이 그 후 수십 년이 지나는 사이에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해 대수술이 필요한 상태에 도달했음에도, 문 대통령은 그런 인식을 갖지 않은 듯 행동했다.
정권 초기에 '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를 내세웠지만 정작 대통령은 그 세 가지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부동산 불로소득임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동산 투기란 거대한 괴물과 같은 존재인데도 그것을 제압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수단이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내내 단기 시장 조절 정책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적당히 관리하면서 거기에 약간의 주거복지 정책을 추가하는 정도로 부동산 정책을 펼쳐왔으니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2.4 대책을 발표해 대대적인 공급 확대 정책으로 기조를 전환했으나, 이는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존재 증명용'으로 내놓은 '헛다리 정책'일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엉뚱한 방향
임기 말이라 해도 대통령의 부동산 인식이 정확해지고 있으니 반가워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전체 발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아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적폐', 즉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을 청산할 수 있는 근본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그 방안이 무엇인지 제대로 제시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근본적 제도 개혁을 강조하면서 내놓은 것이라곤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자는 내용뿐이다. 대통령은 이번 LH 직원들의 투기가 비정상적인 부동산 거래와 불법 투기를 제대로 막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이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온전한 인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단 것'이 있으면, 주변의 벌들이 몰려드는 법이다. 벌이 몰려오는 것을 막으려면 단 것을 치우면 된다. 이를 그냥 두고 몰려오는 벌을 쫓으려고만 한다면 벌을 막지도 못하고 자칫 벌에 쏘이기 쉽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이를 등한히 한 채 공직자 단속에만 골몰한다면,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단 것을 치우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해서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주택공급에서 공공의 역할을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에 집중하는 것이다. 토지보유세 강화에 따르는 조세저항이 두려우면 기본소득과 연계하면 되고, LH 자금 사정으로 미루어 토지임대부 주택과 장기 공공임대주택만 공급하기가 어렵다면 LH를 해체하는 대신 토지주택청을 설립해 일을 맡기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직자의 불법 투기를 비난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문 정부의 책임도 크다. 투기적 가수요로 인해 발생한 집값 폭등 현상을 공급확대로 해결하려는 엉뚱한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 정책을 추진한 것도 문재인 정부요, 2.4 대책으로 서울 곳곳에서 급진적인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하도록 가속 페달을 밟은 것도 문재인 정부다. 필자는 최근 발간된 책 <다시 촛불이 묻는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사회경제개혁>(동녘)에 실린 글 '부동산공화국 해체를 위한 정책 전략'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2.4 대책의 내용을 살피면, 사업 지역 내 부동산 소유주의 이익은 철저하게 보호되고, 사업을 시행할 LH와 SH에는 엄청난 일거리가 주어지며, 건설업체도 상당 기간 일감 걱정을 덜게 되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부는 사업을 통해 공공이 확보할 개발이익은 공유된다고 밝혔지만, 그 이익의 약 75%는 부동산 소유주에게 직간접의 혜택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국토교통부가 무주택 서민들의 눈앞에서 부동산 소유주와 공기업 그리고 건설업체를 위한 '개발의 향연'을 펼치려 한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공직자와 공기업 직원에게 과도한 재량권을 안겨주면 부패 발생은 불가피하다.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이야말로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자고 역설하면서도, 2.4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여기저기 단 것을 계속 깔아놓으면서, 달려들면 혼내겠다고 벌들에게 엄포를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이율배반의 전형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