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에 나온 암탉들낮에는 이렇게 평화롭게 산에도 올라가지만 밤에는 듣보잡 짐승에게 수난을 당한다. 녀석은 수닭보다 암탉을 선호한다
오창경
우리는 녀석이 족제비인지 삵인지 아직 존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밤마다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고 무인 카메라까지 설치하는 수고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대로 소극적인 방어를 한 것이 음악을 틀어놓고 입구에 LED 전등을 밤새도록 켜놓는 일이었다.
야행성인 녀석이 전등의 효과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녀석의 존재를 잊고 방심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자, 녀석의 방문은 다시 시작되었다. 닭장 주변에 쥐를 잡는 끈끈이를 놓기도 하고 개도 묶어 놓으며 녀석과 우리의 치킨 게임(치킨을 지키기 위한 게임인가?) 같은 치열한 두뇌 싸움이 벌어졌다. 동네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닭장 안에 음악까지 틀어놓게 되었다.
"소용 읍써? 내가 닭장에 CCTV라도 달아줘?"
방앗간 사장님은 쌀겨를 가져가는 간격이 전과 같지 않게 되자 우리의 치킨게임이 실패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랬다. 녀석은 또다시 밤새 켜놓은 7080 팝송을 들으며, LED 불빛 아래서 우아하게 닭을 잡아먹고는 사라졌다. 보름 만에 녀석은 팝송을 감상하는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인간의 집 근처에 살다 보니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금방 습득하는 것 같았다.
뒷산에 사는 스라소니는 사냥을 한 산비둘기의 깃털만 남기는 깔끔한 식성인 데 반해 이 녀석은 닭가슴살과 내장 부위만 섭취하는 편식성이었다. 녀석이 남긴 닭의 사체 처리를 우리가 고민하게 만드는 고단수의 짐승이었다. 시골라이프의 첫 알테크 성공 자축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듣보잡 공공의 적 앞에서 우린 속수무책이었다.
"그 X자식이 우리 닭을 먹게 하느니, 내가 먼저 다 잡아먹어 버리고 말겠어."
이렇게 저주와 울분을 쏟아놓다가,
"아니야, 녀석과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지 뭐. 인간인 우리가 자비를 베풀어야지. 녀석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도 닦은 사람 행세를 하는 이중성격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이름도 파악 못 한, 보지도 못한 짐승을 향해 공허한 욕을 퍼붓는 조증과 울증의 무한 반복에, 우리가 먼저 닭을 잡아먹는 소심한 복수전을 닭고기 파티로 기획하기로 했다.
굿바이 알테크
개뿔. 알부자와는 거리두기를 하며 살았던 우리가 무슨 팔자에도 없는 알테크람. 우린 알부자의 꿈을 먹어서 조져버리는(없애버리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지도 올리고 밥을 사야 할 지인들에게는 전화를 돌리고 소식이 궁금한 친구들에게는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녀석들에게 닭고기 시식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우리였다. 조용한 산골에 날마다 울려 퍼지는 모닝 꼬끼오 소리에 야생의 본능이 깨어나지 않을 야수가 어디 있으랴.
녀석들이 우리 닭장에 침입한 것은 그들의 본능에 충실한 것일 뿐이었다. 낮에 주인을 믿고 야수의 영역에 함부로 침입해 먼저 심기를 건드린 것은 우리 닭들이었다. 주인이 잘 먹여서 근육질 몸매와 마성의 꼬꼬댁 소리로 먼저 유혹한 것도 우리 닭들이었다. 우리 닭들은 그 야수가 밤의 제왕으로 뒷산에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존재라는 것을 몰랐던 죄밖에 없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포기하고 체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시골라이프 알테크는 닭고기 파티를 열고 닭 굽는 냄새를 진동시켜서 오늘 밤에도 근처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듣보잡 야수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끝을 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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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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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팝송에 조명까지... '알테크' 위한 처절한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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