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모가 남긴 편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까지는 모르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첨 아이를 버리는 비정한 사람이 아니다. 아이에 대한 마음을 꼭꼭 눌러담은 편지다. 아이에게 유일한 낳은 엄마의 흔적이다.
김지영
지난 10년 동안 베이비박스 문을 열었던 미혼모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다시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아이들도 많아지지만, 같은 베이비박스로 와서 사회의 무관심 속에 무작정 시설로만 가야 했던 안타까운 처지의 아이들이 있었다. 유감스럽게 이 아이들 모두 새로운 부모의 품에서 오로지 저에게로 향한 온전한 사랑을 받고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러지 못한 이유는 어처구니없게 우리 사회 유기아동 보호 최후의 보루인 입양법과 유기아동보호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 말하자면 유기아동보호를 위한 법률과 공적 장치가 가정보호라는 국가정책과는 반대로 유기아동을 마구 시설로만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2019년 11월 공개된 감사원 감사보고서는 우리나라 아동보호 체계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헤이그 협약은 '행복하고, 애정 있고, 이해하는' 분위기 속에서의 원가정 최우선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아동보호 선진국들은 이 원칙을 따른다. 헤이그협약 비준 전 서명국인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가정 보호 최우선 원칙에 따른 보호아동의 보호 원칙은 원가정→입양→위탁/그룹홈→시설 순으로의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보고서에 드러난 현실은 완전히 거꾸로였다. 이를 감사원에서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했다. 현행입양특례법의 가장 큰 피해자가 그 수치의 대다수였다.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거나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아이들이 언론을 장식하는 동안에도 서울 관악구 난곡동 가파른 언덕길을 거슬러 올라 베이비박스 안에 포기된 아이들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아이들 옆에는 여지없이 손으로 쓴 편지가 놓여 있었고, 입양법에서 강제하는 무조건적인 출생신고를 도저히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사정을 말하고 있었다. 거기 말하는 출생은 미혼, 근친, 외도, 성폭행 등 각각 저마다의 사연들로 다양했다. 사연이 무엇이든 살아난 삶은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완전하게 부모로부터 양육과 친권이 포기된 아이들에 대한 가장 최선의 보호 방식은 가정 보호이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권리이자 국가적 책무다.
하지만 감사원 보고서는 증언하고 있었다. '가정보호 비중이 감소하는 등 시설 중심 보호 체계가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가정 보호를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는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 실태를 분석한 결과,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929명(96.6%)이 임시 보호되다가 아동양육시설 등 시설로 보호조치 되었고, 임시 보호 이후 가정 보호로 조치된 아동은 33명(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이 가장 안전하게 보호되어야 할 공적 체계 안에서, 공적으로 명시된 가정 보호가 아닌 시설로 보호조치 되었고 그 아이들 숫자가 5년 동안 자그마치 929명이라는 의미였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장차 백 년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부모와 가족들이 주는 사랑 안에서 자라지 못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시설 속에서 삶을 시작했다는 냉혹한 현실이다.
5년간 962명 중 929명(96.6%) 시설로... 국가는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