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출하회원들이 직접 상ㆍ중ㆍ하품 별로 품질을 구분해 가격을 매기고 실명인증을 한다.
최육상
진열대에는 모과, 가지, 죽순, 딸기, 도라지, 시금치 등 다양한 농산물들이 있었다. 이름표를 살펴보니 설씨의 이름이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집에서 일일이 다듬고 종류 별로 포장해서 가져와요. 여그 와선 가격표 출력해서 붙이고 진열하죠. 사실은 제가요, 낫 놓고 기역자도 몰랐어요. 컴퓨터에 컴 자도 몰라요. 회장님과 팀장님한테 배웠어요. 로컬푸드 농산물들은 정성 들여서 갖고 오니까 많은 회원분들 상품이 그날 그날 다 팔리면 좋죠. 상해서 버리면 아까운게."
어떤 질문에도 설씨의 표정은 밝았다. 매일 아침부터 서둘러 나오는 일이 쉽지 않을 터인데 힘든 기색이 별로 없다. 더구나 어렵게 발품, 손품을 팔아가며 번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기는 더 쉽지 않았을 터. 설씨는 장학금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제가 어려서부터 못 배웠어요. 저희 때 없는 사람은 정말 없었(가난했)거든요. 못 먹고, 못 배우고, 배도 많이 굶주리고 했어요. 제가 뭘 할까, 고민 끝에 회장님께 말씀을 드렸죠. 작은 금액이지만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은데 어쩌겠냐고. 다행히 회장님도 농협도 흔쾌히 동의해 주시더라고요."
"아부지 생전에 봉사하자" 팔덕면 마을 돌며 냉면 봉사
설씨는 3녀 1남, 4남매를 두었다. 큰 딸이 공무원이고, 작은딸(살림)·셋째딸(식자재도매)·막내(은행원)가 수원·부천·전주 등에서 살고 있다. 설씨는 자식 이야기를 꺼내며, 서로 돕고 부대끼는 마을살이를 자연스레 들려줬다.
"아들이 팔덕면 전체 25개 마을인가, 작년 재작년에 주민들에게 냉면 봉사를 했어요. 왜냐면, 그것도 제가 원했어요. 아부지(남편)가 그동안에 마음이 너무 좋다 본께, 보증 잘못 서고 이십 년 넘게 고통을 받았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청산하고 나니까 몸이 아파요. 그래서 아들한테 아부지 살아계실 때 봉사를 좀 하자 그랬어요."
팔덕면 25개 마을 인구는 1400명 남짓이다. 어림잡아도 1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여름날 냉면으로 더위를 식혔을 것이다.
설씨는 "팔덕면 농협 직원들하고, 농가주부모임 회원들이 많이 협조해 주셨다"며 "아들이 냉면을 택배로 부친다고 하기에, 농협에 농협 차량으로 싣고 오면 어떻겠냐고 문의했더니 도와주시고, 동네마다 다니며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께 냉면을 대접해 주셨다"고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