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차량에서 내리고 있다.
유성호
그런데 정작 주사위를 던진 윤석열 전 총장은 로마 시대의 '평민파'라기보다는 '보수파'에 가까운 인물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히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는 윤석열이 아니라 이재명 지사가 시저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보수 기득권 세력의 아성의 명맥을 이어가는 정당이다. 그리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 대척점에 서 있지만 엄연한 기득권 세력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재명 지사야말로 루비콘강을 건너야 할 인물이다. 참다운 의미의 평민파의 선두에 서서 말이다.
그런데 윤석열 총장이, 보수 세력의 눈에 보기에 '기득권 세력'인 현 정부를 치고 나온 것이다. 뭔가 박자가 맞지 않는 듯 보인다. 오히려 로마 공화정 시대에 시저에게 권력을 '빼앗긴' 보수파(optimates)가 다시 그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암살단을 조직하듯 대타로 윤석열 전 총장을 내세운 모양새이다.
물론 시저를 암살한 세력은, 기대와는 달리 그가 독재자가 되는 것에 환멸을 느낀 주변 세력이었지만 말이다. 과연 윤석열 전 총장이 그런 보수 세력의 염원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윤석열의 다음 선택지... 국민의힘 아닌가
명확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대선 출마 의지를 암시한 것으로 보아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이른바 권력의지(Wille zur Macht)는 윤석열 전 총장에게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직은? 없다. 정치 경험은? 없다. 정치 자금은? 어느 정도 있지만 넉넉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윤석열 전 총장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무엇인가? 아마도 국민의힘 행일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신당 창당'은 어불성설이라고 본다. 사실 한국 정치계에서 신당을 창당하여 성공한 사례는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도 성공 사례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트럼프가 미국의 정치 지형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신당 창당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은 이유를 윤석열 전 총장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전 총장의 다음 행보는 국민의힘 내부의 자잘한 세력들과의 연대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대중의 인기이다. 미국 정치계의 완전한 아웃사이더였던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결국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대중의 지지 덕분이었다.
윤 전 총장은 일단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언론인 <조선일보>가 돕기로 작정하고 나선 모양새이니, 남은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건 대중의 지지이겠다. 보수 언론이 세몰이에 나서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것이다. 그런데 리얼미터의 지난 1~2월 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지사는 상승 추세(21년 1월 23.4%→2월 23.6%)인 반면, 윤석열의 인기는 점차 식어가고(2020년 12월 23.9%→ 21년 1월 18.4%→2월 15.5%) 있었다(매월 1일 발표, 그 밖의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만약 이재명-윤석열 양강 구도가 확정되면, 당연히 보수 세력이 결집하는 효과로 지지율은 현재보다 더 상승하게 될 것이다.
내려가던 윤석열 지지도, 반등?
후보가 누가 되든, 결국 대선은 정당의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 전망은 이채롭다. 이재명 지사나 윤석열 전 총장이나 다 아웃사이더들이다. 정당 내부의 골수 지지세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의 커다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른바 민주당 내 최대 계파인 친문 측에서 이재명 지사에 대한 견제를 시작한 모양이지만, 대세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의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홍준표 정도가 겨우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윤석열과는 인기도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결국 양당에서 대선 후보를 선출할 때, 국민경선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치면, 대중의 지지율이 결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이재명-윤석열 양자 대결 구도가 확립될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재명 지사와 윤석열 전 총장이 인기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첫째 이유는 '기득권' 염증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일단 기득권의 반열에 오르면 여지없이 보여주는 이권 다툼과 몸조심에 국민들은 혐오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개혁하라고 권력을 주었는데 적당히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는 것이다.
이재명-윤석열이 인기있는 이유
권력은 국민이 개혁하라고 준 것인데 마치 자신들이 전쟁에서 이겨 획득한 전리품이나 되는 듯이 자기들 마음대로 권력과 재물을 주고받고 하는 꼴이 싫은 것, 이것이 바로 시저가 암살당한 근본적 이유와 일맥상통하는 정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근본적 염증일 것이다.
물론 이낙연 대표도 친문 계파에 있지 않으니, 엄밀한 의미에서 여당에서 기득권을 지닌 주류는 아니다. 그러나 정치에 오래 몸담은 결과, 국민들의 눈에 이낙연 대표는 기득권에 속하는 인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정작 본인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한국의 국내외적 상황은 정치·경제적으로나 질병 관리 차원에서나 위기인 상황인데 기득권자들의 특성인 보신주의가 이낙연 대표에게서 보이기에, 국민들의 지지 확보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느 정도 자업자득인 측면도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는 혁명적으로 치고 나가는 지도자, 마치 시저가 루비콘강을 건너 수구적인 보수 기득권 세력을 격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낼 인물이 필요하다고 본다.
야당이지만 천생 수구적인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도,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전혀 없어 보이니 문제다. 너무 오랫동안 기득권을 즐겨왔던 타성에 젖어 개혁의 동력을 상실한 것으로 본다. 왜 개혁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 방법도 모르니 남은 재주라고는 그저 여당 물어뜯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재주가 없는 듯 하다. 그러니 여당이 아무리 자충수를 두어도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윤석열, 개혁의 동력되기엔... 한계가 있다
윤석열 전 총장이 그런 국민의힘에 개혁의 불씨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힘들 것이다. 기득권 향유의 타성에 젖은 국민의힘이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 본다.
현재 국민의힘 내부에는 여당의 친문과 대적할만한 계파가 존재하지 않고, 오합지졸들이 세력다툼을 하는 형국인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간절히 바라는 인물은 사실 박근혜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과거 지리멸렬하던 한나라당 당대표가 되면서 당을 살린 것이 바로 박근혜이다. 비록 2007년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배했지만, 2008년 이른바 친박연대의 돌풍을 일으키며 보수 정당 입지를 확고히 하고 내친김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박근혜에 대한 향수가 아직 국민의힘에는 강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