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일간지에 실린 고흥택의 사진
조선중앙일보
게다가 깍두기는 그렇게 눈길 끌 수밖에 없는 모습에 더해 강박이 아닐까 싶을 만큼 독특한 행동으로도 유명했다. 계절이나 날씨에 상관없이 매일 비슷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순회하며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녔던 것이다. 유명 백화점, 다방, 극장 등이 날마다 그가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었다. '걸어 다니는 시계'로 불렸다는 칸트 같은 존재가 1930년대 중반 서울 장안의 깍두기였다.
배우나 가수 같은 직업 연예인은 아니었고, 사실 뚜렷한 경제 활동을 하지도 않는 깍두기였지만 그는 어느덧 서울 시민이라면 정말 모를 수가 없는, 요즘 말로 '셀럽'이 되어 있었다. 때문에 앞서 본 바와 같이 대중가요 가사에도 등장을 했고, 심지어 연극이나 영화 쪽에서도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잡지 기사 주인공으로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영화사에서 깍두기 소재 영화를 기획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조선중앙일보> 1935년 11월 2일자). 기획은 아마 불발에 그쳤던 것으로 보이나, 실제 고흥택에게 제안이 갔던 것은 사실이었다.
또, 깍두기의 인기가 절정이었던 무렵 새로 개관한 동양극장에서는 극단 신무대가 <깍두기>라는 단막 희극을 상연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는 실제 깍두기가 깜짝 출연을 했다. 연기자가 아니다 보니 대사도 없이 그냥 무대를 한 번 휘돌다 나갈 뿐이었지만, 길거리에서나 보던 깍두기를 극장 무대에서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는 충분했다(동아일보 1935년 12월 3일자).
길지 않았던 관심, 잊힌 '깍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