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풍경
정누리
얼마 전부터 나의 자취방에 대한 특이한 소문이 퍼졌다. 우리 집이 '뷰 맛집'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와 창문 너머의 탁 트여 있는 경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곳의 월세를 궁금해했다. 넌지시 말해줬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싸도 너무 싸서.
갑자기 얘기의 주제는 집값으로 바뀌었다. 한 명은 대학생 때 처음으로 서울 대학가에서 자취를 했는데, 단칸방 하나가 월세 120만 원이었다는 얘기를, 서울에 취직한 다른 친구는 내 집 월세의 두 배를 주고 사는데 집에 빛도 제대로 안 들어온다는 얘기 등을 했다.
'다시 이 지역에 와서 살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매일 왕복 3시간을 지옥철에서 출퇴근할 자신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많은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서포자(서울을 포기한 사람의 줄임말)'가 되지 못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일 거다.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해서 이만 가보겠다'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친구들을 역까지 배웅했다. 분명 오랜만에 만나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데, 왠지 마음 한쪽이 무겁다. 하루 종일 붙어 있던 우리들의 거리는 언제부터 멀어졌을까.
원치 않은 '서울살이'를 택한 청년들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나를 '김포의 딸'이라 불렀다. 2살에 경기도 외곽으로 이사 와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 친구들은 대개 대학, 취직, 결혼 등의 이유로 이곳을 떠났다.
그들은 딱히 '서울살이'를 원치 않으면서도 출퇴근 시간 등의 이유로 이 지역을 떠나야만 했다. 나 또한 대학이나 직장을 서울로 갔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내고, 훨씬 작은 단칸방에서 삶을 꾸려야 했을 것이다.
나는 그간 오마이뉴스에서 15편의 자취생 이야기를 썼다. 퇴근 후 막걸리로 요리를 해먹고, 로컬푸드를 사먹고,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이것이 단지 나 개인의 부지런함 덕분일까. 사사로운 것에 시간을 낼 수 있는 환경의 차이는 아닐까.
몇십 년의 세월 동안 경기도 외곽, 내가 사는 지역도 많이 변했다. 논 위에 수많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들어섰다. 나는 사람들이 우리 동네를 '베드타운(Bed town)'이라 부르는 것이 못마땅했다. 이 지역도 충분히 특색 있고 재미난 것들이 많은데, 그저 '잠만 자면 되는 곳'으로 여기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생각을 바꿔 놓는 장면을 목격했다. 새벽에 일어나 출근 전 조깅을 하는데, 버스 정류장에 긴 행렬이 있었다. 그들은 잠도 깨지 못한 채로 서서 졸며 서울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필시 나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했을 그들과, 물병을 들고 새벽 산소를 마시는 나의 모습은 몹시 대조적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과 체력이 필요했다. 나는 운 좋게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