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을 물어뜯는 돼지와 트럭 바깥으로 똥을 싸는 돼지
이현우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오물 냄새가 아니라 돼지고기 음식점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환상 속 냄새 같았다. 오물 냄새로 가득한 장소에서 동시에 음식점 냄새라니. 스스로를 의심했다. 함께 비질(도축장 등을 방문해 목격하고 기록해 공유하는 행동)에 참여한 시민의 말에 따르면 '수육' 냄새를 맡았다고 한다. 환상이 아니었다. 돼지들이 붙어 있으면서 열이 나고 열 가운데 살냄새가 났던 것이었다. 실제로 돼지가 실린 트럭에 손을 가까이하면 사우나에서 증기를 내뿜는 것 같은 열기가 느껴졌다.
배가 고팠는지 땅의 오물과 흙을 핥아먹는 돼지도 있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라 돼지는 도축 전 12시간 이상 굶겨야 한다. 운송 중에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일하게 허락된 물도 마시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갈증을 느끼는 돼지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동료 돼지들의 살을 비집고 때론 누워있는 돼지를 짓밟고 다가왔다. 짓밟힌 돼지들은 비명을 질렀다. 물을 주는 것조차 선뜻 망설였다.
트럭기사와의 대화
한창 비질을 하는 우리에게로 한 트럭 기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심적으로 움츠러들면서 긴장됐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동물보호단체예요?"
"음... 보호단체는 아니고요. 돼지들을 만나러 왔어요."
"아니, 돼지들이 비명을 지르는 건 트럭이 너무 좁아서 그런 거예요. (물을 주던 우리의 모습을 지켜봤던 것 같다) 물 조금 준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중략) 안타까워서 그래요, 안타까워서. 우리야 먹고살기 위해서 이 일을 한다지만 당신네는 돈 써가면서 여기까지 와서..."
"맞아요. 물이라도 주려고요... 마지막 가는 길이잖아요."
트럭 기사의 말은 사실이다. 무기력했다. 한 마리의 돼지도 구조하지 못하는 우리의 '비질'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