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왼쪽), 임푸른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오른쪽)
김예지
내가 <다크룸>을 집어든 건 2020년 4월이었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Nonbinary transgender) 당사자로 20대 총선에 출사표를 낸 김기홍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그리고 임푸른 당시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를 인터뷰한 뒤였다.
개인의 역사는 늘 복잡하기 마련이지만, 두 사람이 거쳐온 길 중엔 내게 조금 생경한 부분들이 있는 게 사실이었다. 이 책을 통해 두 사람에 대해, 그리고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에 대해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알아가고 싶었다. ([관련 기사]
"성소수자가 불필요? 광고 감사히 받고 국회로 가겠습니다")
그들의 인터뷰를 정리한 기사의 말미에, 나는 "평범하지만, 진보적인 꿈을 꾸는 이들 덕분에 한국사회는 '혐오가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연대가 승리'하는 광경을 조금이나마 일찍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두 사람은 소수정당 소속이었고, 비례 순번도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비례용 위성정당의 난립으로 표가 분산돼 정의당이나 녹색당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이들이 국회에 입성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하더라도, 존재의 가시화 자체가 한국 사회에 큰 진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소망을 담아 저 문장을 썼다.
하지만 김기홍 후보는 총선을 끝내 완주하지 못했다. 과거 자신이 올렸던 SNS 글을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진 뒤, 스스로 사퇴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부족했고, 옳지 않은 걸 접하고 배워왔다"면서도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고부터 계속 공부하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공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다짐대로, 김 후보는 무작정 숨거나 활동을 접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복기하고 반성하면서, 동시에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이자 제주 녹색당 당원으로 사회 문제에 대한 자신만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런 그가 24일 세상을 등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녹색당은 추모의 글에서 "(그는) 완벽하진 않은 이였지만 완벽하게 살아남아 질책도 응원도 달게 받고자" 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꼭 들어가고 싶었던, 그래서 바꿔내고 싶었던 한국 정치판은 아직도 성소수자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18일 단일화 협상을 위한 첫 TV 토론에서, 금태섭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에게 "퀴어퍼레이드에 나갈 생각 있으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안 예비후보는 "차별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자신의 인권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권들도 굉장히 소중한 것 아니겠습니까. 표현할 권리 있고 그렇지만 거부할 수 있는 그런 권리도 마땅히 존중받아야 된다"라고 말했다.
만약 김기홍 퀴어활동가가 그와 같은 자리에서 마이크를 쥐고 말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이야길 했을까. 지난번 인터뷰에서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저 살아가는 건데 왜 존재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죠? 논쟁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퀴어 이슈부터 웹 접근성, 교육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늘 열정적으로 파고 들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변화의 의지가 컸던 그가 좀 더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가졌다면 어땠을까. <다크룸>의 수전 팔루디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 사회가 김기홍씨를 "하늘에서 뚝 떨어져 '여성의 공간을 침범하는 괴물'이 아닌, 자신의 시간을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온 맥락있는 존재"로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나는 김기홍씨를 잘 모른다. 인터뷰를 하는 두세 시간 동안 그를 대면했을 뿐이다. 다만, 모든 일에 적극적인 것만 같았던 이미지와 달리 수줍음을 많이 타던 모습, 직접 제주에서 챙겨온 한라봉을 건네주던 손길, 꼭 그 한라봉처럼 화사한 색의 가디건을 입고 미소 짓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세상의 문제를 논할 때, 그리고 자신이 국회에 들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설명할 때 유독 단단해지던 목소리도 기억한다. 더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가 품었던 크나큰 가능성을 분명히 기억한다.
차별과 편견과 혐오가 없는 세상에서, 그가 편안히 쉬기를 진심으로 빈다. 그가 남겨둔 말들을 곱씹고 '나의 친구들을 지켜내고 싶다'던, 그가 못다 이룬 꿈을 이어가는 건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숙명여대 법학과 합격자 A님, 변희수 하사님 함께 살아갑시다. 살아내지 않고 그냥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작년에 두 친구를 떠나보냈고, 또 다른 여러 친구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중 한 친구가 "성소수자랑 장애인 취업 못 하지 않게" 노력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저는 그 소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 소원을 들어주고 제 다른 친구들도 지키려면 많은 분이 일상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도 지키고 싶습니다. (김기홍 후보가 변희수 하사와 숙명여대 합격생 A에게 보냈던 연대 편지 중에서, <경향신문>, 2020년 2월 6일)
다크룸 - 영원한 이방인, 내 아버지의 닫힌 문 앞에서
수전 팔루디 (지은이), 손희정 (옮긴이),
arte(아르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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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논쟁하는 정치판에 김기홍이 남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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