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비텔 <서점 일기>
여름 언덕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서른한 살의 혈기왕성한 스코틀랜드 청년이 서점 직원으로서의 고단함과 일의 지난함에 대해 다룬 오웰의 이 수필을 먼저 읽어봤더라면, 그의 운명은 좀 달라졌을까.
안타까운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는 당시 <서점의 추억들>을 읽지 않은 상태였고, 덜컥 고향인 스코틀랜드 위그타운에 있는 한 중고서점을 인수한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서점이란 무엇인가' 매섭게 깨달아간 그는 뒤늦게 오웰의 수필이 날카롭고 정확한 현실을 담고 있다고 평하며 이렇게 말한다.
... 사실 서점 주인의 일상은 그와는(사람들이 목가적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일상과는 전혀 딴판이다. 특히 "우리한테 오는 손님 중 대다수는 어느 곳을 가든 민폐가 될 사람들이지만, 서점에서는 더 특별한 기회를 노리는 부류"라는 오웰의 표현은 현실과 가장 딱 들어맞는 부분이다. (<서점 일기> p.8)
자영업의 '매운맛'을 보여드립니다
책 <서점 일기>는 저자 숀 비텔이 자신의 중고서점 '더 북숍'을 운영하며 쓴 1년여간의 일기를 담은 책이다. '더 북숍'은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중고서점이고, 영국 언론 <가디언>이 뽑은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멋진 서점' 3위에 오를 만큼 유명세가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서점 일기> 속 숀 비텔의 하루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하고 멋진 서점'의 오너라는 수식과 어울리지 않게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서점 일기>라는 서정적인 제목에서 잘 상상하기 힘든, 자영업자의 '매운맛' 현실이 가득 담겨있는 책이라고나 할까. "여태껏 읽어 본 중 가장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가장 즐거운 서점 회고록"(뉴욕타임즈)이라는 평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럼, 그를 분노케 하는 원인이 대체 뭐냐고? 대부분은 '사람'이다. 이를테면, 이런 사람들 말이다.
3주 전쯤 아마존에서 주문받아 배송한 <오리엔트 특급열차 : 사적인 여행기>라는 책이 다음과 같은 쪽지와 함께 되돌아왔다. "유감스럽게도 기대했던 책이 아닙니다. 삽화가 좀 더 많은 책을 찾았거든요. 교환이나 환불 바랍니다." 혹시 이 손님은 우리 서점을 도서관이라고 착각하고 책을 읽은 다음 반납한 건 아닌가 싶다. (p.58)
서점에 쌓아놓은 책더미를 이유없이 무너뜨리고 나가는 손님, '책을 도둑 맞아 본 적이 있냐'며 의도를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손님, 서점에 들어와 '사실 책엔 관심이 없다'며 자신이 하는 원자력 이야기를 들어보라는 손님, 그리고 업무에 필요한 아마존 배송 시스템을 익히길 극구 거부하고 지독하게 말을 안 들으며, 지각을 밥 먹듯 하는 알바생까지.
때론 신랄하고 냉소적인 그의 인물평들이 '너무하다' 싶다가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같이 '저 인간'들을 욕하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단, 소중한 내 일터를 마구 훼방 놓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거란 걸 알면서도 매일 서점의 문을 여는 그 고단하고 짠한 마음을 약간은 알 것만 같아서다. 자영업을 해본 적은 없지만, 속상한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다시 일터에 나간다는 게 때론 참을 수 없이 버겁고, 힘들 거라는 건 안다.
또, 21세기에 중고서점을 한다는 건 매순간 '사회의 변화'와 싸우는 일이기도 하다. 숀 비텔은 서점에 찾아온 다양한 손님들을 응대하고, 온갖 잡무와 행정처리를 하면서 동시에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판매 사이트나 '트립어드바이저' 등에 올라온 서점 리뷰까지 관리해야 한다.
온라인을 매개로 만나는 손님들은 때론 근거 없는 악평을 남기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보다 책 배송이 늦다며 다짜고짜 화를 내기도 한다. 또, 굳이 '더 북숍'에 찾아와 설렁설렁 책을 구경하며 '킨들(아마존의 E북 리더기)로 읽는 게 더 좋다'며 떠드는 손님들도 상대해야 한다. 이런 극한 직업이 따로 없다.
하지만 그는 결코 책방을 '포기'하지 않는다. 분노로 가득 찬 문장을 읽다가도 웃게 되는 건 중간중간 책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의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고객들이 속사포같이 쏟아내는 의미 없는 질문, 서점의 위태로운 경제 사정, 점원들과 끝도 없이 벌이는 사소한 언쟁, 진이 빠질 만큼 집요하게 책값을 깎으려 드는 손님'들이 지금의 괴팍한 자신을 만들었다 불평한다. 그러면서도 바로 이렇게 덧붙인다. "그럼 이런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으냐고? 아니올시다."
그래도, 서점 하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