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이청
서울역사박물관
"스튜디오가 왜 마장동에 자리 잡게 됐냐면 (중략) 나와 함께 공장으로 허가를 받은 동업자 분이 이곳에 있던 영창피아노 직원이었어요. 원래 이곳이 1950년대쯤 영창피아노 공장이 있던 곳이에요. 영창피아노 회사가 이사를 가면서 나랑 동업하던 분이 그 공장 건물을 인수하면서 스튜디오도 여기서 함께 마장동에 자리 잡게 된 겁니다."
피아노 회사가 이사를 가게 되어 그 공장 건물을 인수해 스튜디오를 열었다는 이야기인데, 이청의 증언에는 한 가지 빠진 점이 있다. 피아노 회사, 즉 영창산업은 마장동 공장에서 음반도 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1962년 간행 <한국연예대감>에 실린 고려레코드제작소 공장 주소 마장동 366번지와, 1969년 간행 <1970년판 영화·연예연감>에 실린 유니버살레코드사 녹음실 주소 마장동 366번지가 동일한 것은 바로 그 점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정리해 보자면, 고려레코드 또는 유니버살레코드라 불리던 영창산업의 음반회사가 1960년대 중반 어느 시점에 상표·부지·운영권 등을 모두 이청과 그 동업자에게 넘긴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청의 동업자는 1968년 무렵부터 유니버살레코드 대표로 등장하는 허진으로 보이며, 유니버살레코드 운영권 변동에는 1965년에 처음 제정되어 1968년 연초부터 시행된 '음반법'이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1960년대 주소와 현재 주소가 다른 이유는 1968년 무렵 지번 변경을 통해 마장동 366번지가 791번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69년 연감 수록 주소가 여전히 366번지인 것은 아마도 변경 전 주소를 관행적으로 그냥 기재한 결과로 보인다. 791-2번지 녹음스튜디오 바로 옆, 지금은 음악과 아무런 관련 없는 건물이 들어서 있는 791-1번지도 1960년대에는 유니버살레코드 공장으로 음반을 찍어 내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