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니·퐁녓학살 피해자 응우옌득상과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 호찌민시에 거주하고 있는 그가 마침 고향 퐁니·퐁녓을 방문했을 때 평화기행단을 만나 당시 사건을 증언했다. 피해 당시 14세였던 그는 ‘1968년 2월 12일’에 겪은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베평화재단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그날도, 상 아저씨가 자신의 집에서 런 아저씨를 만날 것이기에 아마도 별일이 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손님이 집을 방문하면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으며 그를 편안한 곳으로 안내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상 아저씨는 아니었다.
그는 런 아저씨와 짧게 인사를 나누고선 불쑥 퐁니·퐁녓학살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군의 위협에 방공호에서 나갔다가 총을 맞고 쓰러졌던 14살의 그 날, 헬기로 후송되어 살아났지만 7년간 병원을 전전했던 이야기 등을 상 아저씨는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당신이 내 아픔을 이해하겠냐는 듯, 마치 한국군에게 쌓아뒀던 억울함을 퍼붓는 것처럼, 말투는 거세져만 갔다.
상 아저씨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며 50여 년 전 그날의 상처에 휘둘리고 있었다.
오빠가 귀한 손님을 거실에 세워두고 거친 말과 감정을 쏟아내자, 탄 아주머니가 몇 번이고 상 아저씨를 말렸다. 하지만 끝내 상 아저씨는 상의를 걷어 올려 자신의 복부에 난 끔찍한 상처를 런 아저씨에게 보여줬다. 순간 거실에는 침묵이 흘렀고 옆에 있던 나도 정신이 멍해졌다.
피해자, 치유 불가의 상처를 품고 사는 이들
어색함을 깨기 위한 반사적인 질문이었을까. 상 아저씨는 런 아저씨에게 당신의 가족은 몇 명이 죽었냐고 불쑥 물었다. 런 아저씨는 담담히 대답했다. 두 명, 어머니와 여동생. 그러자 상 아저씨의 눈빛이 점차 평안해졌다.
가족들은 상 아저씨를 건넛방으로 황급히 데려갔고, 그렇게 사태는 마무리됐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나는 '평화기행'이나 '피해자 인터뷰' 같은 준비된 자리가 아닌, 피해자 가슴 속에 그간 잠들어 있던 울분과 원망이 예기치 않게 적나라하게 표출된 순간을 본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속으로 그렇게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