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인간>의 저자 권수영 교수
유영수
작년에 4부작으로 방송된 tvn 프로그램 'Shift'에서 코로나 확진자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을 가족과 유관 기관 관계자 등과 인터뷰한 그에게 방송을 하면서 어떤 걸 느꼈는지 물어보았다.
"모든 상담은 애도 상담이라고 봅니다. 상실한 것에 대해 슬퍼해야 하는데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코로나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데 이걸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히 숫자로 보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에 대해 애틋해 하는 마음, 애도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죠. 미국 뉴욕타임즈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부고를 1면에 실으면서 사람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했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노력들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은 권수영 교수와 줌(zoom)으로 나눈 인터뷰의 내용이다.
- 현재 가습기살균제 보건센터를 책임지고 계시는데 그 피해자들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느끼셨을 거 같아요.
"전국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7천여 명쯤 있다고 하는데요. 환경부에서 작년 3월부터 그분들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취지에서 이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저희 학교에서 위탁관리하고 있습니다. <치유하는 인간>을 탈고하면서 그분들께 헌사하는 내용을 책에 적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중에는 직장을 잃거나 학교생활이 어려워지는 등 일상생활이 무너져 버린 분들이 많은데, 가족들을 위해 가습기 살균제를 사서 사용했던 분들이 자책감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이 매우 안타깝죠. 저같은 전문가나 국가 차원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돌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힐링'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라틴어 Homo Sanans(치유하는 인간)를 말하고 싶은데요. 히포크라테스는 '의사는 치료하고 자연은 치유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이것은 신이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체는 물론 정신적인 면에서도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을 여행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외적인 것 말고 내면에서의 힐러의 기능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회복탄력성이라고 말해도 괜찮겠죠."
- 대학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실 때와 방송에서 대중을 상대로 강의하실 때, 교수님 개인적인 입장에서 각각 장단점은 뭐가 있을까요.
"대학 교수는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로 분류하는데 조교수 때는 자기가 모르는 것만 가르치고, 부교수 시절에는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치는 반면, 정교수가 되면 자기가 기억나는 것만 가르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정교수 정도 되면 중학생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풀어내는 능력이 생긴다고 봐요. 대중들에게는 어려운 말로 강의하면 바로 욕 먹거든요. 일찍부터 대중과 소통하며 강의를 했던 경험은 교수법의 측면에서도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아이들이 정서 조절 가능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공감이 필수적이다' 이런 내용이 책에 있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의 입장에서는 문제가 뻔히 보이니까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서 공감을 하기가 참 어려운 게 현실인데요. 이 두 가지가 부딪힐 때 혹시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부모로서 또 교수로서, 교사의 입장에서 답이 보이면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기 어렵죠. 우리가 다 같이 마음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부모님들이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준다면,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물어보면서 함께 마음을 맞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머리로만 맞추려고 하지 말고, 마음을 맞추면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건 부부 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 한국 사람들은 특히 '감정적이다'라는 표현처럼 감정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우리나라가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이룬 것에는 한국인의 감성이 많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명재판 장면을 아실텐데요. 한 아이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가 친모라고 주장했을 때, 솔로몬이 '그럼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져라'고 한 것이, 얼핏 보면 이성적인 판단같지만 사실 매우 감성적인 면에서 결정을 내린 거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을 적절히 표출하지 못하는 부분인데요. 그것도 관계의 욕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역설적으로 이해하시면 되는데, 예전에 비해 관계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없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고 봅니다. 서로를 향한 감정적 연결점, 연대의식을 지혜롭게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 '치유하는 인간'에서 마음돌봄에 필요한 8가지 기술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따서 힐링이라는 단어를 완성하셨는데요. 8가지 모두 중요하겠지만 교수님이 보시기에 특히 더 중요한 기술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8가지 기술 중 '성장(growth)'을 말하고 싶습니다. 세월호 사건 유가족이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셈인데, 이들에게도 그 어려운 사건을 통해 오히려 성장하는 측면을 볼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구별해서 외상후 성장(PTG)라고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