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가 극에 달했을 때, 그나마 나를 웃게 한 것은 한 동물 프로그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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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는 빨리 손을 쓰는 게 낫겠다 싶어서 구청에서 운영하는 반려견 교육 프로그램을 발견하고 신청했다. 매주 1회씩 두 달 동안 반려견과 보호자가 받는 교육이었다.
가서 놀랐던 건, 매주 토요일 가족들이 반려견과 함께 교육을 받으러 나오는 정성과 열정이었다. 참석한 10팀이 2달 동안 거의 결석하지 않았고, 매주 숙제로 내주는 교육 비디오 촬영을 빼먹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나도 덩달아 열심일 수밖에. 덕분에 밝힘이의 문제 행동은 사라졌고 걱정했던 개춘기도 순하게 넘어갔다. 나의 갱년기도 어물쩍 넘어갔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부딪혔던 또 하나의 난관은 돈이었다. 중성화수술, 양쪽 슬개골 수술 등 2년 동안 수술만 총 세 번을 했다. 그 외에도 산책을 하다 은행을 주워 먹는 바람에 혼비백산해서 병원행, 눈, 코 피부 질환으로 병원행, 또 각종 예방 접종 등 치료에 들어간 돈만 해도 예상치를 훌쩍 넘었다. 밝힘이를 사랑하는 다른 가족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나도 꽤 버거웠을 것이다.
이런 2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잃은 것은 단연 돈이다. 그러나 내 삶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야말로 갱생되었다. 낯선 사람과는 말을 안 섞는 내가 다른 견주들에게 선뜻 다가가서 이야기를 한다. 강아지의 사회성에 앞서 나의 사회성이 먼저 좋아진 셈이다.
하루에 아침 저녁 두 번 산책을 나가는 건 강아지와 나 모두에게 즐거운 숙제다. 함께하면서 나는 종종 행복하다고 느꼈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던데 경계심 많고 소심한 나를 닮아서인지 밝힘이는 다른 강아지들과 사교성 있게 지내는 편은 아니다.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밝힘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도록 지켜봐주고 있다.
그런 과정은 내가 나를 들들 볶고 채근하고 채찍질했던 지난날의 나와 화해하는 치유의 과정이기도 했다. 바뀐 게 어디 나뿐이랴. 밝힘이만 보면 혀짧은 소리를 내는 우리 가족은 이제 이 아이가 없는 생활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또 하나의 변화라면 내가 동물보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버려지는 유기동물이 13만 마리. 한 달에 만 마리 이상 버려진다는 끔찍한 이야기다. 반려견, 반려묘가 버려지지 않고 학대받지 않고 인간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에 없던 관심이 생겼고, 커졌다.
설 연휴 전에 "이제부터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버리거나 학대하면 벌금을 물고 전과자가 될 수 있다"는 기사를 봤다. 조금이나마 처벌이 강해져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아직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반려견 940만 마리 독일의 슬기로운 반려동물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