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이 벗의 내방(來訪)을 기다린다는 뜻의 원락재(遠樂齋)이고 왼쪽이
서당채인 세심재(洗心齋)이다. 나는 옥연서당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세심재에서 하루 묵었다.
김숙귀
300년 전통의 고택(古宅)에 외국인들이 하룻밤 묵어가겠다며 찾아왔다. 지리산 자락 상사마을 쌍산재를 배경으로 한 TV프로그램 <윤스테이>를 보며 문득 잊고 있었던 소중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늦가을, 1박2일 여정으로 안동 여행에 나선 적이 있었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던 중 우연히 옥연정사를 알게 되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하회마을 건너편 부용대 기슭에 자리한 옥연정사는 선조때 서애 류성룡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지내며 국보인 '징비록'을 집필한 곳이다. 지금은 서애 선생의 15대손이 거주하며 숙박을 원하는 손님들을 묵어갈 수 있게 한다고 했다.
봉정사를 거처 마지막 타오르는 도산서원의 아름다운 단풍에 가슴을 붉게 물들이고 월영교를 구경했다. 헛제사밥 한 그릇으로 요기한 뒤 옥연정사에 도착했다. 안주인이 나와 반갑게 맞으며 묵을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넓은 대청마루를 지나 방에 들어서니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안았다.
쌀쌀한 11월 여정인데다 오후에는 잠시 겨울을 재촉하는 비까지 지나간 터라 잔뜩 움츠려 있던 몸이 스르르 풀리며 편안해졌다. 침구가 깔려 있는 방 안에는 옛 여인들이 사용하던 작은 거울과 휴지통이 전부였다. 나는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이불속으로 다리를 뻗고 한참 동안 그저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