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새겨진 엄길리 암각 매향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철암산 암벽의 좁은 통로 한쪽에 새겨져 있다.
이돈삼
매향비(埋香碑)는 대개 바닷가에서 나타난다. 다음 세상에서 미륵불의 세계에 태어날 것을 바라면서 향나무를 바닷가 갯벌에 묻고 세웠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의 탄생을 바라던 민중의식이었다.
하지만 이 마을은 달랐다. 바위에 새겼다. 기록으로 봤을 때 1344년(충목왕 원년)에 세웠다. 조성연대와 목적, 장소, 매향을 한 집단과 발원자 등이 적혀 있다. 글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새겨진 점도 별나다. 서호보건지소에서 연결되는 철암산(120m) 중턱의 바위 한쪽에 새겨져 있다.
마을사람들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고 '글자바위'라 불렀다. 전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옛날에 보물을 묻어두고, 그 장소를 바위에 적어뒀다. 하지만 나중에 해독할 수가 없었다.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물을 캐면, 액이 끼어 화를 당한다고 했다. 보물을 찾으려고 바위의 밑을 파던 사람이 천둥과 벼락에 놀라 도망갔다는 일화도 전한다.
엄길마을을 지켜준 매향비와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