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그의 복직을 위해 ‘희망 뚜벅이’ 30일차 행진에 함께한 시민들이 3일 경기도 평택 진위역을 출발해 병점역까지 도보행진을 벌이고 있다.
유성호
▲ 김진숙 "문재인 정권은 왜 계속 '최선 다한다'는 말만 하나?" ⓒ 유성호
이날 김진숙 희망뚜벅이 행진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시민 정지현씨도 함께 했다.정씨는 <오마이뉴스>를 만나 "김 지도위원의 얼굴이 너무 수척해 보이더라" 면서 그를 향한 걱정부터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걷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나 혼자 잘 살자고 이러는 게 아니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은 그만큼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 자체로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이 차별받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81년 김진숙은 대한민국 최초로 조선소 여성 용접공 출신이 된다. 그러나 불과 5년 뒤인 1986년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으로부터 '무단결근'을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당시 스물여섯 나이에 노조 대의원이 된 그는 집행부의 어용성을 폭로하는 전단을 배포했다. 한진중공업은 김진숙이 노조활동을 할 수 없는 직업훈련소로 발령을 냈다. 그는 이를 거부했고 회사는 해고 통보를 했다. 당시 경찰은 김진숙을 검은색 보자기에 씌운 채 대공분실로 끌고 가 고문을 했다.
이에 대해 김 지도위원은 자신의 책 <소금꽃나무>에 "벽도 빨갛고 천장도 빨갛고 욕조 변기 세면기가 다 빨간 방에서 나를 빙 둘러선 사내들의 눈빛마저 붉은 이곳에서 시커먼 보자기에 덮여 싸인 채 끌려왔다. 그곳에서 생사조차 몰랐던 삼촌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면서 "(고문을 한) 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그 몸서리쳐지는 사실이,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온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절망이었다"라고 고백했다.
당시 김진숙을 끌고간 경찰은 김 지도위원의 아버지가 이북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빨갱이로 몰았다. 이후 김 지도위원은 해고 36년의 기간 동안 대공분실에 세 번 끌려가고, 두 번의 징역살이를 하며 수배생활 5년을 하는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김 지도위원은 이날 행진 중 밝은 표정으로 "함께 걷는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면서 "(2011년) 크레인 농성 때도 그랬지만 계속 빚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렇게 함께 걸으니 희망도 생기는 것 같고 기분이 좋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복직하는 그날까지 웃으면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김 지도위원의 희망뚜벅이 걸음에는 경북 구미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울산 대우버스(자일대우상용차) 해고노동자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각자 만든 자보를 몸에 걸친 채 함께 했다.
한편 암 투병 중인 김 지도위원은 항암 치료도 중단한 채, 지난해 12월 30일부터 뚜벅이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31일차인 4일은 병점역, 32일차인 5일은 수원역, 33일차인 6일은 인덕원역, 희망뚜벅이 마지막날인 7일은 흑석역을 출발해 최종목적지인 청와대에 닿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