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뉴스로 보도된 해당 기사들의 제목 화면 갈무리
인터넷 갈무리
지난 1월 12일 <중앙일보>는 "[단독] 화살 쏴 친구 실명시킨 초등생...法 '교사도 책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인터넷 기사가 실린 시각은 새벽 5시다. 4시간쯤 지난 오전 9시 30분, 뉴스통신사인 <뉴스1>은 "화살 쏴 친구 실명시킨 초등생…'교사도 공동책임, 2억 3200만원 배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두 기사가 불러온 파문은 컸다. <뉴스1>을 인용한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고 현장 교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사고로 교사가 몇억의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면 수학여행, 체험학습, 생존수영 모두 폐지해야 해요."
"음주 운전 사고 책임을 운전자가 아닌 단속 하지 못한 경찰에게 묻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장난감 화살의 고무 패킹을 빼낸 다음, 집에서 몰래 숨겨 온 커터 칼로 뾰족한 흉기를 만들어 친구 눈을 실명시킨다는 일은 예측하기 힘든 사고예요."
현장 교사의 격한 반응을 불러낸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중앙일보>는 해당 사건을 섬세하게 취재하고 보도했다. 해당 기자는 사고 발생 3개월이 지난 2017년 10월 19일에도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그런데 '단독'이라는 2021년 1월 12일 기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기사는 "수학여행지에서 친구가 쏜 화살에 맞아 실명한 초등학생 A군(사건 당시 12세) 사건에 대해 법원이 '가해 학생의 부모와 학교는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기사 제목, "法, 교사도 책임"이라는 문구와 어우러져 학교와 교사에게 배상 책임을 선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신사인 <뉴스1>은 한술 더 떠 "교사도 공동책임, 2억3200만원 배상"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2억 원이 넘는 배상금을 담임교사가 책임진다는 보도로 충격은 일파만파 펴져갔다. 두 기사는 제목과 첫 문장을 제외하면 특별히 사실에 어긋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제목과 첫 문장으로 사건의 본질을 비틀어 놓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법원이 교사 또는 학교에 배상 책임을 물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1박 2일 현장 체험학습
2017년 7월 13일 경북 OO초등학교 5·6학년 학생 20여 명이 1박 2일 일정의 현장 체험학습을 떠났다. 자정 무렵 B 학생이 쏜 장난감 화살로 인해 A 학생의 왼쪽 안구가 파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A 학생은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평생 의안을 착용해야 하는 중상을 입었다. 피해 학생의 아버지는 가해 학생의 부모, 담임교사, 국가(경상북도 교육청)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가해 학생의 부모와 국가(경상북도 교육청)가 공동으로 2억 3200만 원 상당의 금액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2019.11.14.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 2018가합3431). 이와 함께 담임교사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므로 담임교사의 소송비용은 원고(피해 학생의 부모)가 부담하도록 결정했다.
1심 법원은 ▲ B 학생이 장난감 화살 상단에 붙어있는 고무 패킹을 제거하고 끝부분을 칼로 깎아 날카로운 화살을 만든 사실 ▲ '뾰족한 화살로 사람을 쏘면 다친다. 하지 말라'고 친구들이 말린 사실 ▲ 담임교사가 캠프 전날과 당일에도 위험한 물건으로 장난을 치지 않도록 안전교육을 실시한 사실 ▲ 새벽 1시까지 숙소에 감독자를 배치했더라도 '아주 짧은 순간 발생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려움 등을 근거로 이 사안을 담임교사의 중과실로 볼 수 없는 사고라 판단했다.
국가배상법 제2조(배상책임)에 따라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 배상 책임은 국가에 있다. 국가는 피해자에게 배상한 후 해당 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과실의 경우에만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중과실이 아닌 과실에 대해서는 해당 공무원에게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1심 법원은 담임교사가 보호·감독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지만 '고의에 가까운 현저한 주의를 결여한 상태, 즉 중과실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 법원의 판결로 2억 3200만 원 상당의 배상금은 가해 학생의 부모와 경북도교육청이 부담하게 되었다.
도교육청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법원은 2020년 11월 12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도교육청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여 사실상 1심 판결의 내용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2심 판결 두 달 후 이루어진 <중앙일보>의 단독 보도와 <뉴스1>의 기사로 인해 판결의 내용이 '교사의 배상 책임'으로 둔갑한 것이다.
항소심에서 경북도교육청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고이므로 교사의 과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청의 배상 책임은 교사의 과실을 전제로 한다. 교사의 과실이 없다면 사용자의 위치에 있는 교육청의 배상책임도 발생하지 않는다.
대구고등법원은 교육청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 가해 학생인 B가 과천과학관에서 친구인 J에게 장난감 활 세트(활 1개, 화살 5개)를 선물로 사주었고, J는 투명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50cm 크기의 장난감 세트를 오후 일정 내내 손에 들고 다녔지만, 담임교사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 ▲ 인솔 교사들이 저녁 10시부터 12시까지 취침 지도를 했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12시 이후에도 떠들고 놀았으며 사고가 자정 직후에 발생한 점으로 교사에게 보호·감독 의무 소홀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험난한 법정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