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경력단절은 돈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무엇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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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들은 이야기였지만 공무원인 누군가는 3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 자녀 셋을 낳고 9년째 휴직 중이라고 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는 2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 둘째를 낳았고, 프리랜서인 나는 육아휴직이 없어 경력 단절이 되었다.
또 다른 대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는 제도상으로는 2년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는 있으나 현재 자기 팀에 두 명의 다른 여직원이 임신 중이고, 내년에 둘 다 휴직 예정이라서 자기까지 임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자녀 계획이 부부의 의지와 결심에 의한 것이 아닌 직장 동료의 임신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회사원들은 아이를 낳으려면 모여서 '김 과장이 올해 둘째 낳고, 이 대리가 내년에 첫째 낳아' 하고 순서를 정해야 하는 지경이다.
몇 년 전 내가 일했던 작은 규모의 학원은 정직원 여자 강사가 세 명이었다. 원장은 15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부원장은 임신을 했고, 나머지 강사는 임신 준비 중이었다. 원장은 어린아이를 키우며 일하느라 항상 시간에 쫓겼다.
아이는 수시로 아팠고 변수가 많은 상황에서 자주 피치 못할 사정들이 생겼다. 늦고, 반차를 쓰고,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부원장은 임신으로 인한 입덧과 두통 여러 증세로 역시나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 반차와 휴가가 필요했다.
이 두 선배의 상황 앞에서 임신을 준비 중인 나머지 강사는 두 명의 부재를 메꾸고 자신의 미래 상황을 미리 지켜보며 한숨을 쉬어야 했다. 누구도 죄가 없다. 한창 일해야 하는 삼십 대 초중반의 나이와 노산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마음, 출산한 여성과 임신한 여성, 임신할 여성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이 죄라면 죄일 뿐이었다.
매년 출산율 통계와 대책 마련 촉구에 따른 정부의 대책은 발표되고 있지만 의문이다. 그 대책들이 정말 임신과 출산을 대처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인지. 정부가 발표한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안을 살펴봤다. 내용을 보니, 출산 일시금 지급, 영아수당과 휴직급여, 지원금 증액 등 여러 문장이 많았지만 한 글자로 줄이면 이게 결국 모두 '돈'이었다.
역시나 정부는 이번에도 고심 끝에 '투입'과 '지급'을 대안으로 내놓은 거였다. 사실 문제 해결의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돈'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 해결의 가장 좋은 방법이 돈은 아니다. 물론 그 지원금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아니다. 임신, 출산, 육아에는 비용이 든다. 하지만 힘은 더 들고, 노력은 더 많이 들고, 그러니까 그에 맞는 '진짜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임신을 계획했을 때 돈보다 더 걱정이었던 건 '돈을 못 벌게 될까봐'였다. 아마 거의 모든 여성들에게 경력단절은 돈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무엇일 것이다. 예산만 증액한다고 나아질 저출산 정책이었다면 늘어난 예산만큼 출산율도 올라야 할 거 아닌가.
육아 7개월, 내가 바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