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상담노동자들이 2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 이들은 1월 27일 오전 10시 30분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단 이사장은 대화에 나서 고객센터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하며 총파업투쟁을 선포했다.
노동과세계
10년 전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입사 모집 공고를 보고 원서를 넣을 당시 나는 단순 업무일 거라고 생각하고 지원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건강보험공단에 전화해 본 적이 없었기에 남들도 그런 줄 알았다. 지역별로 공공기관 직원들이 있는데 상담사는 담당자 연결만 해주는 업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출근 첫날 첫 시간 교육 자료로 백과사전 두께의 책 3권을 받고 난 후 '설마 이걸 다 배운다고?' 의문이 들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대략적인 흐름을 배우는 거라고 단단히 착각했다.
1권 자격, 2권 부과, 3권 급여, 검진, 장기 요양. 처음 듣는 단어는 모두 생소했고, 교육기간 동안 매일 아침 시험을 봤다. 평균 점수에 못 미치면 퇴근 후 따로 남아 시험을 보기도 했다. 교육 기간 3주가 끝난 후 16명이었던 동기는 8명으로 줄어들었다.
점심시간 40분?
백과사전 3권 분량을 완벽하게 배우기에 3주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교육 시간이 부족하니 어떤 부분은 제목만 읽고 대충 넘어가기도 했다. 3권을 공부하면서도 모르는 부분은 공단의 지사로 넘기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3주 교육이 끝나면 현장에서 직장 선배의 콜을 청취하며 '동석'이라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동석 중 선배는 보험료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느냐며 전화해 화내는 민원인에게 부과 상담을 한다. 남들은 모두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인 자식 밑에 피부양자로 올린다는데 본인만 억울하게 보험료를 내고 있다는 민원에 피부양자 등재 요건을 말한다. 보험료를 더 적게 낼 수 없냐는 민원인의 질문에 차기 연계 소득 조정 방법을 덧붙인다.
또 부모님이 입원 중인데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 하니 병원비 입원, 외래 본인 부담금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작년에 바빠서 받지 못한 건강검진을 받고 싶다는 말에 검진까지 등록해 주는 선배의 스킬. 신입인 내 눈엔 신의 영역이었다. 이 모든 걸 한 번의 전화통화로 다 해결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퇴사에 대한 고민이 매일 계속되는 와중에도 팀 배정을 받고, 비록 '닭장'이라고 불리지만 내 책상, 내 자리가 생겼다. 신입사원 모집 공고와 근로계약서 모두 9~18시 근무시간이라고 하지만, 팀장은 아침 8시 40분에 무조건 컴퓨터를 다 켠 상태로 로그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느 날 팀장은 팀원들을 불러 모으더니 좋은 소식이 있다며 '오늘은 점심시간이 50분'이라고 전달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신입 교육 때 점심시간이 1시간이었기에 당연히 근무 중 점심시간도 1시간인 줄 알았다. 옆자리 선배에게 물어보니 '최근엔 점심시간이 계속 40분이었다'라고 했다.
나는 건강보험 고객센터가 첫 직장이 아니었고 이전에 고객센터 근무 경험이 있었지만 40분 동안 점심시간을 주는 곳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공공기관 고객센터라면서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는 출근시간, 휴게시간도 지키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우리들은 부당한 처사에 다들 뒤에서 욕했지만, 노동부에 신고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참았다. 한 달 후 8명 남은 동기는 4명으로 줄었다.
노동자끼리 갈등 몰아가는 이상한 평가
신입 상담사도 예외 없이 하루 100콜 이상을 받게 했다. 전화 종료 후 제대로 상담한 게 맞는지 자료라도 찾아볼라치면 어김없이 관리자가 '지금 대기 현황판에 고객 대기가 안 보이느냐'며 후처리 관리하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하루하루 전쟁터였다. 하루 평균 120~140콜을 받는데, 지사로 전환(호전환)하는 콜이 2%를 초과하면 실적 감점을 당하게 된다. 120콜 중에 2%면 2개의 콜만 지사로 연결이 가능하다.
건강보험 상담 업무를 하다 보면 반드시 공단 지사를 연결해야 하는 민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압류해제, 복합 증 체납 분할, 긴급을 요하는 취득, 상실 등 내가 선택해서 지사로 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 반드시 지사 담당자에게 전환해야 하는 업무 규정이다.
출근 후 근무 한 시간 만에 압류해제 두 개를 지사로 호전환하니, 남은 근무시간 7시간 동안 지사 연결을 할 수밖에 없는 전화가 들어올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업무 규정대로 처리하는데 감점을 주는 건 부당하다'고 회사에 항의하니, '원청인 공단에서 도급업체를 평가할 때 내려준 지침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사 전화번호를 묻는 고객에게 전화 사유를 다 확인해야 하고, 고객이 이전에 통화한 지사 담당자를 찾는데도 상담사인 저에게 다 말해야 연결이 가능하다고 두 번, 세 번 반려를 해야 한다. 지사 전화번호 안내 또한 상담사 평가 항목에서 감점이며, 도급업체 평가에서도 감점이기 때문이다.
'무슨 국정원 전화번호라도 되냐, 대통령보다 지사 직원 통화하기가 더 힘들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을 들을 때도 부지기수다. 건강보험공단과 고객센터는 갑을 관계를 넘어 주인과 노예, 양반과 머슴 관계가 아닌가 싶다.
16명 동기 모두 퇴사하고 나 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