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부가 인용한 해외 사례 국가들 2016년 난민인정률 비교(캐나다는 2015년)
공익법센터 어필
법무부가 원용한 국가들은 난민제도의 운용역사와 경험이 길고, 난민신청자가 매우 많고, 난민보호제도가 한국과 비교하여 비교할 수 없이 잘 갖춰져 있으며, 확고한 난민보호의 철학에 기초하여 제도를 운용하다가 일부 절차를 소위 '신속절차'로 후퇴시킨 나라들이다.
미국은 1952년 이민국적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 INA)의 제정을 통해 일정한 경우 난민의 추방을 유예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0년 난민법(Refugee Act)를 제정했다. 미국은 대부분의 국제인권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국내법을 따로 제정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다양성에 근간한 이민정책을 내세우나, 한편 강경한 법집행도 미국이 가진 이면이다. 난민제도 운용의 역사도 거의 반세기에 달한다.
2015년 기준으로 미국 내의 난민신청자 수는 17만 2740명으로 전 세계에서 3위에 이를 정도로 많다. 트럼프 정부에서 약간의 변동은 있었으나 10여만 명의 난민을 해외에서 매년 데려와 정착시키는 전 세계 1위의 재정착 난민국가다. 취업, 교육, 건강, 언어, 주거에 관한 확고한 정착지원으로 난민들을 미국 사회 안에 신속히 편입시킨다.
부적격결정에 의한 사법심사 제한이 있더라도 법무부의 안과 달리 추방유예는 가능하며, 명백히 이유없는 난민신청에 관하여도 법무부의 안과 달리 설명과 해명의 기회가 보장된다. 미국의 난민인정률은 어떤가? 놀라지 않길 바란다. 2016년 기준 적극적 난민신청 83%, 방어적 난민신청 31%, 다 합하여 43%다. 이런 곳이다.
반이민을 기치로 2017년부터 집권한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가정폭력을 난민의 사유에서 제외하는 등 억제정책을 펼쳐 매년 난민인정률은 하락했다. 미국의 많은 단체들과 학자들은 정책을 비판했지만, 가장 낮은 2020년의 통계마저도 이민판사에 의한 난민인정률은 26.3%에 달한다.
영국은 난민협약을 1954년에 비준했다. 반세기가 넘었다. 난민신청 수가 2000년대에 들어 증가하고, 2002년 8만 4132명에 이르게 되어, 2005년부터 소위 신속절차 등을 도입하는 제도적 후퇴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난민신청자수가 일부 감소하였으나 2015년 이후 시리아 전쟁을 기화로 난민들의 수가 다시 증가했다.
그러나 영미법계의 축을 이루는 영국은 난민에 관한 축적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확고한 난민보호의 기반이 있다. 영국은 2016년 기준으로 2만 4984명을 심사완료하여 28%에게 난민의 지위를 1차에서 부여했고, 기타 체류허가까지 합치면 난민인정률은 34%까지 올라간다.
캐나다는 다문화주의를 직접적으로 천명하며 난민보호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나라다. 1969년에 난민협약에 가입하였다. 시리아 전쟁으로 인한 재정착 난민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정착시켰다. 해외 공관에서도 보호비자 형태로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제한적 방법까지 마련했다. 매년 2만여 명 정도의 난민신청이 이루어지자 2012년에는 소위 신속절차 등을 도입하는 제도적 후퇴가 있었다. 유엔난민기구, 앰네스티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단체들에서 이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후퇴에도 불구하고 난민인정률은 더 올라갔다. 2012년 35%, 2015년의 경우 56%에 달한다.
독일은 아예 비호권을 헌법상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1953년에 난민협약에 가입하였고, 구체적으로는 1992년 비호절차법을 만들어 구체적 절차를 규율한다. 독일도 시리아 전쟁으로 인해 난민신청자의 수가 증가하자 2015년 비호절차촉진법을 만들어 절차의 일부분을 간이화하는 후퇴를 보였다.
그러나 독일은 전후 유럽의 자신감 있는 강자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국경을 열었고, 2015년에는 25만 명 정도에서 2016년에는 69만 명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심사받는 동안 난민신청자의 거주지역을 제한하나, 생활과 숙박을 책임지고 생계비를 지급한다. 자발적인 난민옹호에 관한 시민들의 연대와 자원봉사가 전국적으로 탄탄하다. 독일의 난민인정률은 2015년 기준 48.5%, 2016년 기준 36.8%다.
영국과 캐나다, 독일은 난민신청자수가 급증한다는 이유로 신속절차들을 도입하는 일부 제도 후퇴를 보였으나 '그래도 괜찮았던' 배경에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제도가 있었다.
한국의 경우 2019년 기준 0.4%의 난민인정률을 보이고 설사 난민인정을 받았더라도 아무런 정착지원이 없다. 이처럼 사람을 방치하는 한국은 이와 같은 맥락을 무시한 채 제도를 원용해서는 안된다. 위 나라들에서는 일정정도의 절차적 후퇴가 있더라도, 보호할 난민을 확실하게 보호하는 '심사제도가 작동하는' 맥락 속에서 이뤄졌고, 그 이후도 제도는 여전히 작동한다.
타국의 난민제도를 제대로 따르려면
법무부가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신청', '부적격결정'에 관해서만, 난민법을 현격히 후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해외의 사례를 언급해서 원용하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법무부도 앞으로도 다양한 긍정적 난민 정책에 관하여 해외의 사례를 언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 임명된 법무부장관은 차제에 다음과 같은 제도들도 정책 보도자료에 포함하면 어떨까.
우선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처럼 하고 싶다면, 난민인정률을 30% 이상으로 정직하게 부여하자.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규범에 따라 심사하면 이렇게 된다. 인적자원과, 전문성에 관한 교육, 국가정황정보센터와 같은 물적자원을 필요로 할 수 있기에 준비하자. 지역 연방고등행정법원들의 전향적 결정 이래 반군지역과 연관이 있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인도적 체류가 아닌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독일의 선례도 따르자.
한국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에 거의 모두 인도적 체류를 부여해서 숨 쉴 공간만 마련한 기존의 나쁜 결정을 철회하고, 독일의 예를 따라 난민지위를 부여하자. 그러면 그간 법무부가 막아 가족끼리 결합할 수 없게 되었던 과거와 달리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들도 한국으로 와서 부둥켜 살 수 있을 것이다. 여권이 없이 전쟁터에서 태어난 자녀들에게 예전처럼 규정 없다고 내치지 말고, 독일의 예를 따라 1회용 여행증명서를 발부하여 한국까지 오도록 착실히 돕자.
세계 최고 수준의 난민 법률지원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영국의 예를 따르자. 변호사협회에 법무부가 더욱 많은 지원을 하고 영국과 같이 변호사들을 통해 심사관을 전문적으로 교육하자. 영국의 확립된 판례법리들도 당연히 가져오자.
AK&SK 판결 이후 확립된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행사할 수 없는 것도 박해'라는 결론을 가져오자. 예전처럼 수많은 정치 박해, 종교 박해를 피해온 난민들에게 '진짜 신념이 있냐 없냐' 묻고 기각하는 거 그만하고, 그 나라의 상황이 어떤지를 객관적으로 영국처럼 평가하자. 수많은 억울한 난민들이 구제받을 것이다. '성정체성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박해가 아니라 부당한 사회적 제약에 불과하다' 이런 밖에서 언급할 수 없는 부끄러운 논리 그만하자.
아예 캐나다의 예를 따라 이민난민위원회를 별도의 특별행정심판으로 독립된 부처로 만들어 전문성과 속도를 높여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오자. 지침도 공개하자. 난민 관련 지침 정보비공개 그만하고, 캐나다의 예를 따라 인터넷에 상세하게 누구나 난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지침과 절차를 친절히 설명하자.
한국의 난민정책 관련 예산은 1년에 24억 정도다. 정부 총예산의 0.0004%고 사실 국가정책이란 차원에서 보면 0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미국의 예를 따라, 난민인정을 받으면 취업, 언어, 교육, 건강, 주거 지원을 신속하게 실시하여 정착을 돕자.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하지만 돈을 써서라도 해야 하고 결국 냉정하게 봐도 난민은 짐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자산이다. 모두에게 돌아온다.
난민 재정착도 늘리자.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 행정부의 선례대로 돌아가 매년 12만 5000명의 난민을 해외에서 데려온다고 했다. 한국은 1년에 60명 정도니 미국과 8배 정도의 인구차이를 고려하면, 1만 5000명 정도의 난민을 매해 정착시켜야 미국 정도가 된다. 전 세계 재정착 필요난민이 144만 명 정도니,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기여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미국의 예'를 따른다고 했으니 우선 시작해보자. 딱 250배만 늘리면 된다.
난민의 사회적 성원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도 필수다.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 모두 수십 년 전에 민권법 또는 별도의 차별금지법을 마련해놓았다. 현재 당연히 그 예를 따라 법무부도 국가인권위원회의 '평등법' 추진 계획에 발맞추어 적극적으로 입법의견을 내자. 애초에 난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안 된다고 법무부가 직접 입장을 가져야 한다.
미등록 체류자를 제도 안으로 편입하려면, 미국의 예를 따라 미성년입국자추방유예(DACA)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도 검토하자. 더 이상 난민이 영주권 자격을 얻기 위해 자산 요건 2억 3370만 원이 난민에게도 필요하다는 이상한 지침 폐지하고, 미국처럼 일정 시간 경과하면 곧장 영주권을 주고 국적 취득의 기회도 주자. 미등록체류자에게도 일정 요건 만족하면 5년 영주권 주고 3년 후 시민권 취득 기회를 열어주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의 예를 따르자.
마지막으로, 바이든 정부에서 이민, 난민정책을 총괄하는 초대 국토안전부 장관 마요르카스는 1살 때 쿠바에서 피난해온 난민아동이었다. 한국이라면 불가능했을 일, 왜 불가능한가를 평가하고 난민들의 사회적 자리와 근본적 정착을 위한 제도 개선을 미국의 예를 따라 실시하자.
법무부가 공평하고 정직하게 미국, 독일, 영국, 캐나다의 예를 따를 것이라고 믿는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해서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고 9년째 국제사회에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설마 법무부도 해외 사례를 검토한다고 하면서, '신속절차'만 엉뚱하게 분석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외에서 제도를 가져오려면 공평하게 제대로 가져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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