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석방 하루만에 재판 출석2019년 7월 23일, 전날 보석으로 풀려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사법농단’ 관련 재판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희훈
하지만 법원은 '사법행정권자에겐 재판의 독립을 침해할 권한이 없다'는 논리로 번번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모든 쟁점을 다툴 것 같은 기세로 법정에 선 전직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현직 고위법관과 판사들에게 쩔쩔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만 해도 2년 가까이 진행 중이다.
법원의 실패
법대에 앉은 판사도, 피고인석에 앉은 판사도 '독립한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을 뿐'이라는 말만 내세웠다. 그들은 '법정 밖'의 일로 '법정 안'이 오염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정 밖'의 일 때문에 '법정 안'을 의심한다는 말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한국 법원은 높디높은 절벽 위, 견고한 담으로 에워싸인 '서초산성' 안에 스스로를 가둔 듯한 모습이었다.
2019년 여름, 조금이나마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동료 기자들과 함께 독일을 찾았다. 당시 뮌스터의 베스트팔렌 빌헬름대학교(Westfälische Wilhelms-Universität Münster)에서 만난 파비안 비트렉 교수는 행정부가 사법행정 전반을 관리·감독하고, 입법부까지 법관 인사에 참여하는 독일 사법체계를 소개하며 말했다.
"단순히 법원을 통제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법관들이 정당하게, 올바르고 공정하게 일하는지 감독해야 한다. 또 (법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권한을 의회와 행정부가 맡음으로써 전체적으로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의미가 있다."
균형과 견제. 대한민국 제헌국회도 이 민주주의의 기초 원리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 흔적이 헌법 62조 1항, 국회의 탄핵 소추 권한조항에 담겨 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감사원장, 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지난 22일 이탄희·류호정·강민정·용혜인 의원도 "헌법이 정한 법관 견제장치는 국회"라며 '세월호 7시간 재판'에 개입한 임성근 판사의 탄핵 소추를 제안했다. 발의(100명)·의결(150명) 정족수를 넘기기에 충분한 의석 수를 가진 민주당은 사실상 당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이낙연 대표도 탄핵 소추안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탄핵은 길들이기'라는 주장이 빈곤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