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백미' 책표지.
남해의봄날
언젠가 창원에서 열린 경남 활동가 모임 식사 자리에서 생선 반찬에 손도 대지 않고 있으니, 옆에서 하는 말이 "역시 통영 사람들 생선 귀한 줄 모른다"였다. 자그마한 조기구이가 일단 맛이 없어 보였던 탓인데, 그러고 보니 조기는 묘하게 통영에서 인기가 없는 생선이긴 하다.
'통영백미'를 읽고 나니, "생선 귀한 줄 모른다"는 그 말이 새삼 떠올랐다. 맞는 말이다. 사실 통영 토박이인 나부터가 통영 수산물값을 잘 모른다. 어려서부터 어선 하는 이웃, 친척네, 하여튼 여기저기서 "반찬 해 무라"며 생선 한두 마리 쥐여주는 그 일상에 익숙해져 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이렇게나 다양하고 풍성한 수산물, '예술적인' 통영 음식
남해의봄날 신간 '통영백미'(이상희 글, 사진)는 "통영 사람들 생선 귀한 줄 모르는" 진짜 이유를 속 시원히 알 수 있는 책이다. 사시사철 열두 달 이렇게나 다양한 수산물이, 이렇게나 많이 생산되는 곳은 달리 없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복어, 멍게, 멸치, 도다리, 도미, 장어, 갈치, 고등어, 굴, 홍합, 볼락, 대구... '주연배우급' 수산물만으로도 열두 달이 가득 찬다. 볼락이나 도다리, 물메기와 같이 다른 지역에 비해 통영에서 유독 인기가 더 많은 생선도 있다.
'통영백미'는 전국구급으로 유명한 어패류뿐 아니라, 식물성 식재료들도 잊지 않고 조명했다. 방풍나물, 고구마줄기, 박(나물), 방아, 우뭇가사리, 톳, 몰 등 나물과 해조류들은 조연으로서 수산물 요리의 맛에 풍성함을 더하기도 하고, 빠질 수 없는 반찬거리로서 통영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왔다.
이처럼 열두 달 풍성한 수산물과 식재료들은 통영 특유의 음식문화를 낳았다. 풍요로운 바다와 수백의 섬, 그리고 조선 삼도수군통제영의 역사가 더해져 고유의 음식문화가 발달하고 이어졌다.
그렇게 이상희 작가가 '통영백미'에 크고 작은 분량의 사진과 글로 기록한 통영음식은 일백여 가지에 달한다. 그래서 '통영백미(百味)'이다.
이 통영 수산물과 음식들은 오늘날 문화관광도시 통영의 기반이기도 하다. 외지인들에게는 종종 통영 대표 음식이 꿀빵이나 충무김밥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 책은 통영 음식문화의 알짜배기가 간편식이나 간식이 아니라 제철 수산물 요리임을 알려준다. 그래서 '통영백미(白眉)'이다.
그러고 보면 통영음식은 너무나 풍성하고 다양해서 한두 가지를 '통영대표음식'이라고 콕 찍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는 마치 "통영 문화예술의 거장들과 업적이 너무 많아서 한두 명을 콕 찍어서 통영 대표 예술 거장이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와 닮았다.
하긴 졸복국, 도다리쑥국, 장엇국, 통영너물(비빔)밥, 볼락김치... 그야말로 '예술적인 음식' 아닌가. 통영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빚어낸 예술적인 통영 음식들이다. 그래서 '통영백미(百美)'이다.
박경리, 윤이상, 김춘수, 전혁림, 유치환과 같은 예술 거장들이 고향 통영에서 이 음식들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음미하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통영백미' 책 읽기가 더욱 풍성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통영 생활, 문화, 역사의 편린을 엿보는 '통영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