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 놓은 양말딸아이들이 양말을 벗어 놓은 모양입니다
임세규
빨래를 개다가 바깥쪽 때가 지지 않은 양말을 보니 30여 년 전 어머니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양말을 벗을 땐 뒤집어 놓아야지..."
부모가 된 나는 그 시절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두 딸들에게 한다.
"이것 좀 봐봐~ 안 뒤집으니까 때가 시커멓게 있네..."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라 그런지 하루에 한 번꼴로 세탁기를 돌린다. 매일 돌리지 않으면 금세 빨래통이 꽉 찬다. 빨래할 옷들이 밀려서 많으면 널 때도 힘들고 갤 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난달까지 설거지를 했지만 이번 달부터는 빨래, 청소기 밀기로 담당을 바꿨다. 맞벌이 부부의 현실이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제2의 출근'이 시작된다. 집안일이 만만치 않다.
육아와 회사 생활을 동시에 한다는 건 그야말로 초인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 집안일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둘째 녀석 가영이와 함께 빨래를 개다가 헷갈린다. 아내 옷인지, 큰 아이 옷인지.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선영이는 제 엄마와 옷을 같이 입나 보다. 아내 옷과 섞여버려 뒤죽박죽이다.
얼마 지나면 가영이도 훌쩍 커버려 여자 셋이 입는 옷을 구분하기 어려울 듯싶다. 그럴 땐 아내 옷으로 몰아넣으련다. 딸아이들 원성이 자자 하겠지만, 누가 옷을 같이 입으라나...
둘째 아이는 요즘 '용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어디 가서 알바를 하겠는가.
"아빠가 빨래 개고, 너는 거 도와주기. 500원."
둘째 아이는 한 달이면 대략 10000원 남짓 번다.
"그래. 어차피 용돈 주는 거 '겸사겸사'지 뭐."
"에이~ 아빠도 양말 뒤집어서 벗었네~"
들켰다. 빨래를 개다가 둘째 녀석이 내게 뭐라 한다. '크크크' 아빠가 미안...
여름에는 햇볕이 강해서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가 잘 마르지만 선선한 날씨에는 건조가 잘 안 된다. 저녁을 먹다가 아내는 '빨래 건조기를 사고 싶다'고 한다. 조카가 큰마음 먹고 구입한 모양이다. 뽀송뽀송하게 마른다는데, 여러모로 좋으니 이건 뭐 '빨래의 혁명'이란다. 메이커나 용량에 따라 천차만별인 가격이겠지만, 제법 비싼 건조기가 우리 집에 꼭 필요한 건가 싶기도 하다.
오늘도 빨래를 갠다. 시커먼 양말 때가 그대로다. 큰 녀석은 여전히 양말을 거꾸로 벗은 채 '휙~' 빨래통으로 던진다. '이 녀석아, 너도 엄마가 되어 봐라. 아빠랑 똑같은 말 할걸.'
"뒤집어서 놓으면 잘 안 빨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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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속에서 행복을 찿아가는 가영이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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