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생전의 응우옌떤런. 그는 베트남의 한국군 학살 생존자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최대 민간인 학살로 손꼽히는 빈안학살 당시의 비극적 상황을 20년간 증언해왔다. 지난 2015년에는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여 국회에서 한국 정부에 진실 규명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사진 이재갑 작가)
한베평화재단, 이재갑
응우옌떤런(Nguyễn Tấn Lân). 빈안학살 생존자. 1951년생.
1966년 당시 15살이던 아저씨는, 베트남 떠이빈사(구 빈안사) 15개 지점에서 일어난 학살 중에서도 2월 15일 일어난 '까인브엄 들판 학살'의 생존자다. 아저씨는 그날 어머니와 여동생을 한꺼번에 잃었다. 한국군이 던진 수류탄이 터지면서 그 파편이 온몸에 박혀 평생을 고통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저씨를 괴롭힌 건, 몸에 난 상처보다는 자신의 눈 앞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어머니·여동생에 대한 기억이었다.
언제나 부고는 갑작스럽다. 지난해 11월 부고 소식이 갑작스레 알려지고 가족들이 장례를 준비하는 사이, 한국 친구들이 장례비와 무덤 조성을 위해 급히 조의금을 모았다. 런 아저씨는 학살 때 돌아가신 어머니 묘 인근에 묻혔다. 살았을 때 국화와 향을 들고 늘 찾았던 어머니 곁으로... 아저씨의 가족들이 묘비에 다음과 같이 새겨놓았다고 한다. "GIA ĐÌNH VÀ NHỮNG NGI B N HÀN QUỐC ĐỒNG L P MỘ".
즉 한국말로는, '가족과 한국의 친구들이 함께 묘를 세우다'는 문구를 묘비에 새겨주었다. 한국 친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지난 2015년 4월. 런 아저씨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학살 피해자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꽝남성 퐁니·퐁넛 학살 생존자 응우옌티탄과 함께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당시만 해도 베트남 사업을 했던 평화박물관이 '하나의 전쟁, 두 개의 기억' 전시를 개최하며 전시 오프닝에 피해자를 초청했다.
2015년 4월, 1000여 명 죽은 학살의 생존자로 한국 찾은 그
나는 당시 이 사업의 책임자로 아저씨를 만났다. 그때 그를 한국으로 초대하는 과정이나, 6박 7일간의 방문 일정 중 일어난 수많은 일들이 지금 자세히 하나하나 기억나지는 않는다.
당시 서울, 대구, 부산을 다니며 학살피해를 증언하고, 국회에서 피해자로서 한국정부에 진상규명과 사과를 요구하는 등 런 아저씨는 지치지도 않고 자신이 겪은 학살의 경험을 증언했다.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에 한국 언론들도 떠들썩하게 응수했던 기억이 난다. 학살 생존자들은 그 존재 자체가 곧 증언이었다. 이 6박 7일은, 런 아저씨 인생에 잊지 못할 사건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