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총파업 62일차 집단단식농성 2일차 서울역에서 농성 중인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의 모습.
연정
"저희는 다른 거 없어요. 돈을 올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정규직 시켜달라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약속만' 지켜달라는 거예요. 보통 사람과 사람 간에도 약속을 하면 지키잖아요. 근데 기업에서 약속해놓고 그걸 이행 안 하면 저희 직원들은 어떻게 해요? 기본적으로 정말 예의가 없는 회사에요. 우리만 예의 있는 거 같아요. 명절 콜이 많을 때는 300개, 400개도 쉬는 시간 없이 소화했던 사람들인데, 오죽하면 여기 나왔겠어요. 정말 약속만 지키면 저희는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일을 할 사람들이에요."
18년 동안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일만 해왔다며 자신을 '곰순'으로 써달라고 한 철도고객센터(콜센터) 노동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곰순씨는 지난해 12월 31일 교섭이 있었는데, 대표이사는 사임하고 사측 담당자들은 휴가 쓰고 나오지도 않았다며, 시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기업이 어떻게 이런 불성실한 행태를 보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냥 복귀하는 건 더더욱 못할 일이라고 했다.
속아서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
곰순씨가 처음부터 코레일 자회사(코레일의 비정규직) 직원이었던 것은 아니다. 곰순씨는 2002년 철도청 직접고용 계약직으로 입사했고, 2년 뒤인 2004년 '코레일서비스넷(현 '코레일네트웍스')이라는 회사로 소속을 옮기게 된다. 정부의 '철도청 운영부문 공사화, 건설부문 공단화' 정책으로 국가기관이던 철도청이 한국철도공사(열차 운영)와 한국철도시설공단(철도 건설)으로 분리가 되는 때였다.
철도청 공사화 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철도청 민영화, 건설 공단화' 지침에 이어지는 것으로 많은 이들이 철도 민영화 의도가 깔린 정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KTX 승무노동자들의 14년 정규직화 투쟁도 철도노조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징계·해고도 결국 이 철도 민영화 문제로 인한 것이었다.
곰순씨가 철도청 소속으로 일하던 때, 철도청 정규직들이 철도고객센터 관리자로 와서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갑질을 했다. 관리자가 시키면 다 해야만 하는 분위기였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자회사로 넘어가는 사인을 하게 된다.
"저희가 그 역사를 얘기하면 정말 눈물 나요. 거의 속아서 넘어간 거나 마찬가지죠. 너희들 청에서 자회사로 넘어간다. 갑자기 그런 얘기가 있더니 퇴직금 정산을 했어요. 처음에는 거의 철도청 직원 와이프들이 들어와서 일ㅌ하다 보니 무슨 말 한마디만 해도 '네 신랑한테 해가 간다' 한 거죠.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2002년도 입사했을 때, 철도청에서 88만 원을 받았어요. 지금 얼만지 아세요? 세금 떼고 180만 원 찍혀요."
코레일네트웍스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설립된 코레일의 자회사가 아니다. 코레일네트웍스의 전신은 승차권발매 업무를 하던 철도회원협력회(1990년 설립)라는 철도청의 외주 기관이다. 이 회사는 2004년 코레일서비스넷(자본금 7억 5천만 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가 되어 철도고객센터 운영과 KTX 특송 업무 등을 시작했다.
철도청이 공사가 되면서 10여 개의 자회사가 만들어졌고, 이들 자회사 임원의 80%가 철도청 퇴직 간부들로 채워졌다. 이러한 관행은 '한국철도공사'를 거쳐 '코레일'로 이름이 바뀐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그 폐해는 코레일네트웍스 노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코레일에는 코레일네트웍스를 포함해 총 6개의 자회사가 있어요. 코레일네트웍스는 역무와 고객센터 분야, 코레일관광은 승무분야, 코레일유통은 스토리웨이나 매장 운영, 코레일로지스는 물류 쪽을, 코레일테크는 기술 쪽을 해요. 청소 환경 노동자들은 코레일네트웍스로 왔어야 되는데, 기술 분야로 되어있어요. 이상하게 만들어졌죠.
SR은 민영화하려다가 못해 잡혀있는 자회사인 거고요. SR을 제외하면 다 최저임금 받는 노동자들이에요. 철도 노동자들을 이렇게 쪼개놓는 최종 목적은 결국 분할 민영화 아니겠어요?"
단식 중이던 서재유 지부장(철도노조 코레일네트웍스지부)은 말이 좋아 코레일 자회사이고 공공기관이지, 실제론 SR을 제외하면 코레일 자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두 최저임금을 받는 코레일의 하청업체나 용역회사 직원이라고 했다. 코레일네트웍스의 지분 98.98%를 코레일이 갖고 있기 때문에 누가 들어도 무리한 주장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자회사들도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