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강화된 2단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운데 2020년 9월 1일 서울의 한 커피전문점에 '힘듭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이 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공동체의 총화로서의 시스템'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전부는 아닐지라도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적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그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아닐까요? 비록 재정 건전성이 일부 악화된다 해도, 국가 부채가 증가한다 해도, 국가적 차원의 재난이 특정 집단의 희생 위에서 극복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사실 정부 탓만 할 일도 아닙니다. 병자호란 이후를 생각해봅시다. '홍제천 목욕 이후로는 정조 문제를 불문하라'는 정부 방침이 있었지만, 환향녀들을 치욕으로 내몬 것은 결국 당시의 '시민사회'였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를까요? "정부는 자영업자 구제 안 하고 뭐 하는 거야"라고 욕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하늘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정부 재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됩니다. 정부의 과감한 재정 투입을 촉구하고, 그 재정 투입이 가져올 세수 부담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 '다 좋은데 세금은 올리지 말고'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지 않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서울 수복 이후의 대한민국 정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 정부가 했었어야 했던 말, 하지만 하지 않았던 말은 이런 것이었을 겁니다.
'우리에게 닥친 비극적인 현실 때문에 당신들이 받은 극심한 고통을 헤아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당신들이 겪은 고통은 바로 우리 중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고통이었다. 어쩌면 당신들 덕에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이들과 정부가 힘을 합쳐 당신들을 돕겠다. 그것이 우리의 미안함을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하지만 17세기에도, 20세기에도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단순히 영웅호걸들의 무용담에 감탄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겁니다. 역사 속의 과오들을 생각하며, 후대인 우리는 선대보다 조금 더 나은 현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역사를 배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옛적의 중국인들은 '거울 감(鑑)'이란 글자로 역사를 표시하기도 했던 것이겠지요. 역사는 현재를 비춰보는 거울이니까요.
다시 한번 바랍니다. 세월이 흐른 뒤 '모두가 코로나19로 고통받았으나, 모두가 함께해 이겨냈다'라고 역사 속에 기록되기를. 그러기 위해서 정부가 과감하게 소상공인에게 재정을 지원하라고 우리 모두 정부를 강제하기를, 그리고 그에 따른 세수 부담을,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어떻게든 살고 있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소망합니다.
PS.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첫 부분을 보면, 신미양요 이후 미군에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 앞에 조선인 통역사가 나타납니다. 이제 돌아갈 수 있나 보다 해서 들뜬 그들 앞에서 통역사는 '조선 정부가 너희를 송환받기 원하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극 중에서 훗날 극단적인 친일 매국노가 되는 통역사 이완익은 말했습니다.
'조선은, 니들을, 버렸다.'
그 말을 듣고, 어리던 '장포수'가 지었던 이글거리는 분노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그 표정이 21세기에 재연되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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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의 죽음, '환향녀'의 고통... 코로나는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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