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너 익스체인지호.
IntLawGrrls.com 갈무리
스쿠너 익스체인지호의 원래 소유자는 미국인 맥패든(McFadden) 등이었다. 이 배는 1810년 나폴레옹 칙령 위반 혐의로 대서양 공해에서 프랑스군에 나포됐다. '익스체인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이 배는 아무런 교환관계도 없이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 그런 뒤 프랑스 해군에 편입돼 발라우(Balaou)호로 개명됐다.
그런데 이 배가 선박 수리를 위해 뉴욕과 워싱턴 중간의 필라델피아항에 입항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맥패든 등이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이런 일이 지금 벌어졌다면, 맥패든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지지를 받았을지 모른다. 공해상의 나포행위에 불법성이 있다고 인정된다면, 오늘날의 세계 여론은 맥패든을 지지할 법하다.
하지만 당시는 대중과 국가의 역학관계에서 국가의 위상이 훨씬 높았다. 소송이 제기되자, 프랑스 정부가 아닌 미국 법무부에서 스가 총리와 똑같은 말이 나왔다. '프랑스 군함은 미국 법원의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것이었다. 법무부가 이런 의견으로 자국 법원을 압박했던 것이다.
1심 법원은 맥패든의 소유권을 부정했고, 2심 법원은 그것을 인정했다.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은 국가면제 이론에 따라 미국 법원의 관할권을 부정했다. 프랑스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이 있었던 1812년은 미국과 영국 사이에 '1812년 전쟁'이 벌어진 해다. 그래서 미국 입장에서는 프랑스와의 동맹관계가 절실했다. 이는 국가면제 이론이 어느 정도는 정치적 편의성에 입각해 발달했음을 보여준다.
비정치 영역으로 확대된 국가면제 이론
이렇게 발달한 국가면제 이론은 20세기 들어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국가의 활동 범위가 정치 영역에서 비정치 영역으로 확대됨에 따라 나타난 상황이다. 비정치적 분야에서까지 국가면제를 원칙적으로 관철시킬 힘과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에, 국가들은 국가면제에 대한 제한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병조·이중범 교수의 <국제법 신강(新講)>은 "국가행위 중 권력적 행위에 대하여는 국가면제를 부여하되 비권력적 행위에 대하여는 더 이상 국가면제를 부여하지 않으려는 제한적 면제론이 일반화되게 됐다"라고 설명한다.
일반화됐다고 확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 초판이 나오기 1년 전인 1972년 5월 16일에 국가면제를 제한하는 유럽국가면제협약이 체결됐기 때문이다. '국가 선박이라도 통상 목적에 이용되는 선박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1926년 국유선박면제규칙통일협약(브뤼셀협약)에 이어 국가면제에 또 한번의 중대 제약을 가하는 국제협약이었다. 이 협약은 1976년 6월 11일 발효됐다.
국가면제에 대한 제한이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아직 발효되지는 않았지만 이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이 채택됐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977년 유엔총회 결의로부터 시작해 1986년에 잠정초안이 작성되고 1991년에 최종 초안이 작성된 데 이어 2004년에 정식으로 채택된 '국가 및 그 재산의 관할권 면제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유엔 국가면제협약)' 제12조는 개인이 국가에 의해 인적·재산적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국가면제를 원칙상 부정했다.
제12조는 법정 소재지 국가에서 행위가 발생했고 행위자가 행위 당시 법정 소재지국에 있었을 것을 조건으로 국가면제를 부정했다. 당사자들 사이에 제12조를 배제하는 별도의 합의가 없는 한 개인이 외국을 상대로 자국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런 협약이 유엔에서 채택됐다는 것은 스가 총리의 주장이 한물 가고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탈리아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사례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에서 나온 현상에 주목한다. 위안부나 강제징용과 동일한 사안을 두고 독일의 국가면제를 배제하는 판결이 이탈리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 루이지 페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군수공장에 강제징용됐지만 배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의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처럼 그 역시 결국 자국 법원을 노크하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게 됐다.
1·2심과 달리 이탈리아 대법원은 전향적인 판결을 내놨다. 2004년에 대법원은 강행 규범(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을 위반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독일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러자 지금 일본 정부가 검토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방안을 독일 정부가 꺼내들었다. 2012년에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恆) 재판소장을 위시한 ICJ는 독일 편을 들었다. 현재의 국제법 규범을 근거로 하는 재판이었다.
그러면서도 ICJ는 '페리니 사건은 양국의 추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당사자들 간의 합의를 종용했다. 자신있게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쌍방 합의를 촉구했던 것. ICJ가 세계 여론의 눈치를 살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 뒤 이탈리아 정부는 ICJ 판결을 근거로 독일의 전쟁범죄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걸었다.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하게 되면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이 침해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범죄행위에 국가면제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