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남기철 동덕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월간복지동향 편집위원장, 이정현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지부장, 백명희 서울시복지재단 지역공동체팀장
참여연대
남기철 : 우리 사회가 코로나19를 경험한 지 1년이 되어간다. 시설이나 병원에서의 집단 감염 문제, 의료붕괴, 돌봄공백 등 사회복지 현장에서 어떤 위험과 혼란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 특히 올해 초 코로나 1차 대유행 당시 이정현 지부장님은 대구지역 보건의료 현장에 계셨는데 당시의 경험도 공유해 주셨으면 한다.
이정현 : 대구지역에 코로나가 대유행했던 2~3월에 대구지역의 모든 것이 멈췄다. 당시 대구가 경험했던 혼란, 방역의 어려움은 상당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병원에서 환자들이 스스로 퇴원하고, 감염을 우려해 환자가 병원에 아예 오지 않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대부분의 대학병원들도 정상가동률이 4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병상 부족 문제와 의료인력 부족 문제가 터졌고, 자택에서 대기하던 확진자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사망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요양병원에서의 감염 문제도 심각했다. 요양병원은 감염 관리 능력이 전혀 없어서 확진자가 생기면 시설 전체가 감염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요양병원 집단감염 문제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백명희: 말씀하신 것처럼 복지현장의 혼란은 상당히 컸다. 복지관은 방역수칙 단계별 지침에 따라 휴관을 하더라도 급식서비스와 같은 긴급 돌봄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거리두기 단계가 강화되어 복지관을 휴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자원봉사자나 후원자의 복지관 출입도 불가능해진다. 수백 명분의 급식서비스를 자원봉사자의 도움 없이 복지관 직원 인력만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 과중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복지관 이용자들 사이에 격차가 커지는 문제도 있다. 휴관을 하더라도 복지관 이용자 모두가 똑같이 힘든 게 아니라, 이용자의 사회관계망에 따라 격차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코로나 확산 이후 사회교육을 이용하는 어르신과 경로식당을 이용하는 어르신의 삶이 많이 달라졌다. 사회교육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복지관이 휴관하더라도 스스로 다른 관계망을 찾아가는 반면, 경로식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은 경로식당을 이용하지 못하면서 고립되는 상황이 생겼다. 경로식당을 이용하는 분들은 단순히 밥을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 경로식당을 매개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오셨던 거다. 이런 격차를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해온 복지관들은 서비스를 개별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해갔다. 복지관 이용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고 함께 산책하면서 일상을 회복시켜드리거나, 이웃을 연결해드리는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온 정부 정책의 특징은?
남기철: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나온 정부 정책이 많다. 그런데 현장에서 나타났던 혼란이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나타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재난지원금을 꼽을 수 있겠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나온 정부 정책의 특징과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지점을 짚어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
윤홍식: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재난지원금을 포함해서 코로나19에 대응해 지원했던 규모는 대략 GDP의 3% 정도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OECD 국가들이 평균 GDP의 대략 6% 정도를 투입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적은 금액이다.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여러 논쟁이 있는데 사실 전 국민에게 돈을 지급한 경우는 한국과 일본 정도밖에 없었다. 미국은 최상위층을 제외하고 줬다. 재난지원금을 보편적으로 지급한 것은 우리 복지체제의 근본적 문제와 맞닿아 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재난이 닥쳤을 때 유연하게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취약계층을 포함한 여러 계층이 복지제도 사각지대에 방치된다. 이런 구조를 조망하지 않고, 재난지원금의 규모와 누구에게 줄 것인가에만 논의가 집중되었다. 물론 정부의 재난지원금 정책이 의미 있는 지점은 있다. 과거 보편적 무상급식처럼 이 경험을 잘 활용하면 보편적 복지확대에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분명 우리에게 중요한 유산이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코로나19에서 확인된 국민 인식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높은 시민의식을 가지고 국가와 사회에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방역에 더 적극적이었고 마스크도 적극적으로 착용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방역의 피해를 집중적으로 입은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취약계층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응답이 높았다. 일본과 비교한 데이터가 있는데 일본은 자영업자에 대해 70~80%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은 40% 정도였다. 방역에서는 높은 시민의식이 발현되는데 그로 인한 피해를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해결하는 것에는 소극적이다. 1987년 민주화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국민이 권위주의에 맞서 싸웠던 민주적 시민의식과 권위주의 개발국가 시대를 거쳐 오면서 자신의 사회적 위험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경제적 의식이 역설적으로 공존하는 거다. 이러한 사회에서 어떻게 복지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스러워지는 지점이 있다.
최혜지: 재난지원금은 우리 사회의 약점을 확인하는 정책이었다. 재난지원금을 보편적으로 지급했다는 것은, 결국 재난 상황에서 자동안전장치처럼 작동하는 보편적인 소득보장정책이 매우 취약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복지국가를 구상할 때 보편적 소득보장정책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이었다. 또한 재난지원금을 복지정책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정책이 실제 실행되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재정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살리기와 같은 차원이어서 작동할 수 있었지, 취약계층과 소득 중단에 처한 사람들만을 위한 순수한 복지정책은 아니었다. 그런 지점에서 정책을 복지와 경제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볼 게 아니고, 정치적으로 같이 묶어서 논의하는 것이 복지정책에 있어 중요한 전략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돌봄과 관련해서는 정부정책이 미흡했다는 지점을 지적하고 싶다. 긴급 돌봄이나 긴급 보육에서 정부가 무언가를 했다고 말하기 무색할 정도로 실질적인 정부 정책이 없었다. 재난지원금의 사례처럼 소득상실이 사회적 연대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위험이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국민적 인식이 넓다. 반면 돌봄 영역, 특히 노인 돌봄 역시 매우 중요한 사회적 위험이나, 이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부족하다. 돌봄은 여전히 사적인 영역으로 취급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남기철: 정책은 정책대로, 현장의 경험은 경험대로 많은 화두가 던져졌다. 이런 과제가 남겨진 상황에서 새 위험사회는 우리에게 계속 영향을 미친다. 사회복지 영역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미시적인 측면에서 새 위험사회에 복지현장은 어떤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지 생각을 나누었으면 한다.
백명희: 복지관은 지역주민의 삶이 코로나 전후로 어떻게 바뀌어왔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 없이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만 바꾸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 이후 활성화된 복지관 유튜브 영상이다. 온라인 콘텐츠를 직접 이용할 수 있는 어르신들은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지 굳이 복지관이 만든 영상을 찾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차라리 사회복지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온라인 자료 플랫폼을 만들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서비스가 지나치게 온라인으로 전환됐을 때 디지털 소외계층이 겪을 서비스 이용 격차도 고민해야 한다. 결국 복지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지역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주민들과 대면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가야 한다. 안전한 지역사회 공간을 만들어가고, 복지관 시설 중심이 아닌 복지 서비스를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이정현: 보건의료 분야의 경우에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병상 부족 문제와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핵심이었다.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 치료를 대부분 맡으며 겨우겨우 대처했을 뿐 민간의료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들로 수도권에서 치료받기 힘든 환자들이 지역으로 내려오고 있다. 대구지역은 수도권 환자들을 받을 준비를 해오고 있지만, 사실상 조금만 더 확진 환자가 늘어나면 의료붕괴로 이어질 정도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민간영역을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문제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공공의료 영역이 너무나 작다. 공공의료를 강화해가는 게 감염병 사태에서의 가장 큰 화두이다. 또한 의료인력 소진 문제도 심각하다. 대구지역에서 코로나 병동에 배치되었던 간호사 300명 정도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다시는 코로나 병동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답변한 사람이 50%를 넘었다. 시설의 경우 장애인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을 때 어느 병원에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와 제도가 미비하여 고충이 크다고 한다. 이런 현장의 문제들을 지방정부가 지역의 노동·시민사회와 함께 협의하면서 개선하고 코로나 대유행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