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심사위원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며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혜선
글이란 것은 쓰면 쓸수록 갈증이 나는 행위라는 것을 몰랐다. 블로그에 쓰던 어설픈 한 줄 일기로 시작된 나의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쓰기와 에세이집 <엄마에겐 오프 스위치가 필요해> 출간까지 확장됐다. 소설이라는 영역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소설 읽는 것은 좋아했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은 어쩐지 예술적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만 활동하는 영역인 것 같았다. 그런 내가 소설이라는 장르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갈증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한 권을 출간했지만, 무언가 내 안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다. 책이 잘 팔리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글을 생각하면 명치 끝에 무언가가 걸려서 빠지지 않는 묵직함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몰라도 풀어내고 싶었다.
에세이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필터링하게 되어 있다. 그 필터링을 강하게 적용하는 건 나 자신이다.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나'라는 필터링을 통해 나타낸다. 그로 인해 내 글의 수준이 드러나고,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것이 불편했던 동시에 실수할까 두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음껏 쓰지 못했다.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
거짓말을 하고 싶었다. 나의 삶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도. 나를 좀 더 옹호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소설은 거짓말을 하기에 좋은 장르라고 생각했다. 거짓말 뒤에 숨으면 내 안에 있던 알 수 없는 갈증이 해소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단편소설을 여러 번 시도했으나 여러 번 멈추었다.
A4용지로 2장 정도는 무난히 썼는데, 대부분 의식의 흐름대로 남기는 기록에 불과했고, 거짓말로 서사를 꾸미기에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소설 작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단편소설 과정을 신청했다. 과제를 열심히 하면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할 수 있다는 커리큘럼이었다. 강사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여러 편 발표한 기성작가였다.
수업 시작 전, 작가님이 물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고, 어떤 글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이 수업을 통해서 어떤 것을 얻고 싶은지. 수강생들은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를 이야기하면서 단편소설을 꼭 완성하고 싶고, 신춘문예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말을 하고 부끄러웠다. 신춘문예는 그냥 생각 없이 나온 말이었다. 막연히 공모전에 도전할 생각은 있었지만, 그게 신춘문예라는 정확한 목표 의식은 없었다. 아마도 목표지향적인 내 성격상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리라.
초고는 일주일 만에 완성했다. 물론 초고는 쓰레기였고 퇴고는 힘들었다. 나의 첫 소설은 합평에서 문장 난도질을 당하듯 쓴소리를 들었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그렇게 쓴소리를 많이 듣고도 좋았다. 힘들고 어려웠지만 재미있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무언가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다른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로 퇴고가 거듭될수록 글은 점점 좋다는 평이 많아졌다.
"신춘문예에 제출할 건가요?"
마지막 수업 날 작가님이 내게 물었다. '아차, 그렇지.' 처음 수업에서 신춘문예에 도전하겠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지, 실제로 제출할 것으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아 머뭇거렸다.
"다시 퇴고해서 한번 내봐요. 도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요. 아마 이번 주가 마감일걸요?"
작가님은 좋은 소설이 될 수 있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집에 와서 정보를 찾아보니 정말로 이번 주가 마감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퇴고하고, 우편으로 제출했다. 제출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신춘문예는 우편으로 제출한다는 것. 나는 이것조차도 처음 알았다.
첫 도전이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한방에 무언가 결과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야구 경기를 보다가 글을 써야겠다는 영감을 받았다거나 40세가 넘은 나이에 자전적 소설을 써서 등단한 박완서 작가 같은 경우를 생각했다.
첫 도전이 당선으로 이어지는 행운이 나에게도 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람으로 끝났다. 보통 2주 이내에 당선 소식이 전해진다고 하는데, 전화기는 스팸 전화만 열심히 울려댈 뿐, 당선 소식을 전해 주지는 않았다. 2주 마지막 날, 집 청소를 열심히 했다. 실패감보다는 어쭙잖은 첫 소설로 등단을 바랐던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내고 싶었다.
1월 1일,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각 신문사를 돌아다니며 신춘문예 당선작을 찾아 읽었다. 혹시라도 최종심의에 내 작품이 오르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조차 헛된 꿈이었다. 어떤 당선 작품은 전혀 이해와 공감이 되지 않아서 다음에 도전할 용기가 나질 않았고, 어떤 작품은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결과적으로 신춘문예 도전은 실패했고, 소설 뒤로 숨고 싶었던 처음 생각도 실패했다. 소설은 내가 숨을 수 있는 글쓰기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거짓말을 썼지만,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작가님도 알고, 모두가 알았다. 수업을 듣는 다른 이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쓰는 사람의 직업이나 가족관계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경험담이지요?'라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왔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곳인지도 몰랐다. 그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매일 쓰는 성실함으로 돌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