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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주의, 이대로 좋은가?
우리나라에서 친족이나 연고 집단에 집착하여 사회를 가족의 확대 형태로 간주하여 그렇게 조직하고 행동하는 사고와 실천하는 행태나 현상을 '가족주의'라고 한다. 이런 현상이 공적 영역에서도 심각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온 지 오래된 일이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를 핑계 삼는다면 가족주의를 온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족주의는 가족, 혈연, 지연에 기초한 인간적 유대를 공적인 목표나 대의보다 우선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의 인격과 자유 혹은 독립성을 중시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법적‧제도적‧정치적 중립성, 공정성, 합리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태도임은 말할 것도 없다. 좁게 보자면 가족은 형법 151조와 155조에 따라 '가족의 범법 행위에 대한 범인은닉이나 증거인멸에 대해 처벌받지 않는' 특례의 범주에 드는 특별한 관계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상대방에 대한 호칭으로 '가족'이라는 호칭은 국민을 사적 소유의 존재로 착각하게 만든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연고주의를 의미하는 용어인 형님, 동생, 선배 등의 호칭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자기 가족이나 연고 집단이 저지르는 잘못이나 범죄를 가족의 이름으로 감싸주는 무도덕적 가족주의가 공적 영역에서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공화국 시민 사이의 건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주의가 강한 국가에서 나타나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특징
힐러(Peter L. Heller)는 가족주의가 강한 국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문화를 함께 비교해 보고 점검해 보기 위해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김동춘. 가족주의. 42-43에서 재인용).
첫째, 보편적 기준에 근거한 선악 관념이 매우 약하다. 시민의식이나 시민정신이 취약하고 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관념이 매우 약하다. 시민의 정치참여 경험과 의지가 약하다. 세상에 대해 판단하고 행동할 때 특수주의, 지역주의, 후원주의, 운명론, 제도에 대한 회의론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사람들이 주로 자신들의 국가나 정부를 심각하게 불신한다. 지배층은 대체로 부패를 연상시키는 경향이 있다. 공적인 것에 대한 불신감이 높고, 사람들이 행동할 때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셋째, 사람들은 지도층이 타락했으므로 자신이 타락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법을 어겨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넷째, 가부장주의 전통이 강하고 여성 차별과 비하의 관습과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다. 가족주의가 강한 나라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대체로 낮다.
다섯째, 사람들이 생계나 지위 획득, 위기에 처했을 때 후원자에게 의존하거나 청원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있다. 취업이나 승진 등 여러 가지 장에서 구성원 간에 경쟁적인 게임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룰을 권력정치가 왜곡한다고 생각하고, 정치적 후원세력이나 연줄을 잡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의 대국민 호칭
이번 신년사를 통해 교육부장관과 교육감들은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들을 어떻게 호명하는지 검색해 보았다. 서울교육감, 제주교육감, 세종교육감은 아무 호칭 없이 신년 인사 내용만을 발표했다. 교육부장관과 울산교육감, 광주교육감, 강원교육감, 충남교육감은 '학생 학부모 교직원 여러분'이라고 호칭했다. ○○교육감은 신년사 맨 끝에 교육가족이라고 불렀다. 나머지 9곳의 교육감들은 신년사 서두에서부터 '(사랑하는)교육 가족 여러분'이라고 불렀다.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들의 신년사를 누가 관심을 갖고 읽겠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육부장관이나 교육감들의 신년사는 교장, 교감, 장학사들과 교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장학사나 연구사 시험 준비하는 교사들이 열심히 읽어야 하는 문서이다. 그 신년사 내용을 잘 읽고 이해해야만 시도교육청이나 교육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논술문제가 나왔을 때 잘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교육가족'이라는 호칭이 반복되면 교직원들은 학생들도 자신들의 가족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김동춘 교수는 <가족주의>에서 "8‧15 이후 가족주의의 행동을 유도하던 정치사회적, 가부장주의적 '차단'구조를 제거해야 공적 인간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이러한 차단구조를 거꾸로 뒤집어야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족주의적 차단구조를 뒤집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가칭 '공적 영역에서 가족주의 관련 단어 사용 금지에 관한 법률'이 필요하지 않을까? 공적 영역에서 가족주의 관련 단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사적 영역의 가족주의의 문화를 약화시킨다면, 공적 영역의 시민의식이나 민주주의 문화를 더 성숙시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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