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물소와 백로
홍윤정
2021년 새해는 소 해다. 호이안에서 본 물소와 백로를 그려야겠다. 먼저 물소의 윤곽을 그리고 사선을 그어 음영을 넣자. 조심해서 선 하나를 긋고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또 긋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선을 교차시키다 보면 나름의 결이 생긴다. 물소 등에 서 있는 백로를 그리고 콧등에 서 있는 또 다른 백로를 그렸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백로와 물소는 대체 무얼 보고 있는 걸까. 백로는 물소의 몸에 붙은 벌레를 잡아먹고 물소는 백로에게 쉴 곳과 먹이를 제공한다. 둘은 공생관계다. 그림 제목으로 '공생'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우정'이라고 쓸까? 아니다. 그냥 '친구들'이라 쓰자. 새해에는 친구를 더 많이 만들고 서로 공생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싸우지 말고 화내지 말고 대신에 조금 더 양보하고 베풀면서.
작가 김훈은 그의 산문집 <연필로 쓰기>에서 연필을 밥벌이의 도구라 썼다. 연필의 본업은 쓰기다. 김훈은 여전히 연필로 쓰기를 고수하는 작가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 김훈 <연필로 쓰기>
서툴지만 연필을 쥐고 그릴 때 나는 작은 구원을 얻는다. 평면의 그림에 입체감이 생기면 나는 연필에게 경외심마저 느낀다. 종이 위에서 질주하는 연필의 움직임 소리는 듣기가 좋다. 아무렴, 연필은 나의 친구다. 연필이 나를 구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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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애호가, 아마추어화가입니다. 미술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씁니다. 책을 읽고 단상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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