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 사랑 혹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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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동성이든 이성이든 모든 인간관계 안에서 발견되는 사랑과 우정에 대하여 대다수 사람들은 한 마디 이상의 이야깃거리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 사람의 진심이 사랑이든 우정이든 어느 한쪽으로 확 쏠려있으면, 상황이 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정돈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위 노랫말에서처럼 사랑과 우정 사이에 애매하고 엉거주춤하게 걸쳐있는 심리상태를, 아마 불분명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우정과 사랑을 무슨 기준으로 나누면 좋을까? 무엇이 우정이고 무엇이 사랑인가? 무를 반으로 자르듯 두 개의 '가치'를 나눌 수 있을까? 이 물음들에 대하여 정확하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깔끔하게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나 아렌트도 우정과 사랑을 분간하고자 시도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렌트는 정치사상가답게 '공적 영역'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우정과 사랑을 구분하였다. 아렌트는 공적 영역(정치적 영역)을 제시한 다음, 그곳에서 우정은 출현하나 사랑은 소멸된다고 보았다. 아렌트가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이때 우정은 '정치적 존경'의 의미를 품는다.
심지어 아렌트는 본격 정치이론서 <인간의 조건> 한 귀퉁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결코 하지 마세요. 사랑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써두었다. 물론 아렌트는 사랑을 금지하지 않았다. 사랑을 멸시하지도 않았다. 아렌트는 사랑이 '무세계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세계사가 어떻게 돌아가든 그것에 살짝 무심해지면서 두 사람의 연애현실에 초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파트너와의 밀접한 합일을 간절히 원한다. 그들은 두 사람 사이에 '틈'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심정을 갖는다. 아렌트는 그 '틈'을 공적 영역의 중요한 속성으로 본다. 그 '틈'을 아렌트는 'in-between'이라는 용어로 불렀다.
'in-between'은 사람들끼리 가까이 존재하며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면서도, 너무 밀착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아끼며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거리를 가리킨다. 사랑에서는 이 '틈'이 좁아지거나 아예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견해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연인간의 사랑에도 두 사람 사이에 '틈'이 과연 없는 게 최상의 상태인가에 대하여 이견을 보이는 이들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랑은 파트너와의 합일을 원하며, 그 방향으로 매진한다. 하지만 그런 사랑만이 사랑의 전부일까?
아렌트의 첫 책이자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한 멋진 책을 꼽으라면 <인간의 조건>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가 원래 붙이려고 했던 제목이 아니다. 아렌트는 "세계사랑(Amor Mundi)"이라는 제목을 구상하고 있었다.
이제 필자는 다음 글에서, 정치와 사랑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할 의무감을 (자발적으로) 느낀다. 아렌트의 박사학위논문이 "성 어거스틴의 사랑 개념"이었으니, 명색이 [한나 아렌트의 정치개념 말모이]를 표방하는 글이 사랑을 사실 그냥 넘겨서는 안 되리라. 이렇게 단 한 편의 글로 종결지을 수 없을 만큼, 정녕 위대한 개념이자 인간의 실제현실이 곧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 함께 읽을 책: <인간의 조건>, 졸저 <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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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정치수업(위즈덤하우스), 해나 아렌트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지식공작소), 환경살림 80가지(2022세종도서, 신앙과지성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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