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다 된 기타아빠의 것이었다가 무료한 연말연시, 중학생 딸의 방으로 옮겨진 오래된 기타.
은주연
갑자기 주어진 남는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아이가 찾은 것이 기타였다. 남편이 젊었을 때 열심히 쳤던 기타가 아직 우리집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고, 아이의 눈엔 그것이 새로운 놀잇감으로 보였나 보다. 그렇게 아빠에게 기타를 가르쳐달라고 하면서 시작된 기타 삼매경으로 내 눈에는 의도치 않게, 한번도 그려본 적 없는 그림이 펼쳐졌다.
바쁜 아빠를 둔 탓에, 자전거 타기도 아빠가 아닌 엄마한테 배웠던 큰 딸이었다. 그런 아빠와 딸의 기타 정복기는 봐도봐도 흐뭇한 장면이었다. 아이는 코드를 잡고 기타줄을 튕겨 나오는 감미로운 음악에 신이 나는 듯 했고, 생각보다 습득이 빠른 딸에 고무되어 아빠는 점점 더 열정적으로 기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급기야 웬만한 코드 잡기가 끝나고 난 뒤, 좀 더 확실하게 기타를 익히기 위해 찾다가 들고 나온 것이 그 문제의 '찬양책'이었다. 노래를 쳐봐야 기타가 느는 거라며 책장을 휘휘 찾아보던 아빠가 만만하게 들고나온 책에 이 민망함인지 달달함인지 모를(?) 사랑스러운 편지가 쓰여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 작은 소동을 겪고 내친김에 책장 한켠에 있던 먼지 쌓인 앨범까지 소환하여 엄마 아빠 연애 시절까지 낱낱이 들춰보는 재미를 아낌없이 누렸다. 사진마다 꼼꼼하게 갖춰진 민망함과 촌스러움은 심심한 아이들에게 주어진 잘 차려진 상찬과도 같았다.
집콕 연말이 준 뜻밖의 즐거움
이번 연말은 여러모로 예년과는 참 다르다. 매년 해오던 관성대로 밖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대신, 나는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로 집안을 꾸미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식구들끼리 먹을 조촐한 파티음식을 마련하고 함께 볼 영화를 골랐다. 그렇게 단촐하게 보낸 크리스마스와 집콕 연말은 또 나름대로 즐거웠다.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 아이의 방에서는 이제 쉬는 시간마다 기타 선율이 흘러나온다. 아마도 이번 겨울은 저 기타가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추위와 코로나로 여러모로 움츠러드는 겨울이고 연말이라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잘 찾아보면 이 안에서 식구들끼리 부대끼며 겪는 또다른 소소한 즐거움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우리는 올 겨울, 함께 질리도록 게임을 할 것이고, 귀가 아프도록 큰 아이의 기타 연주와 작은 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될 것이며, 집에서 끊임없이 돌리는 삼시세끼에 지쳐가겠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감사하게 연말을 맞이할 것이다.
밝아오는 2021 신축년에는 좀 더 활기차고 건강한 한 해가 되길 소망하는 세밑의 바람을 마음 속에 꾹꾹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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