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성당은 5월항쟁 직후부터 희생자와 구속자를 위한 월요미사와 5·18추도 미사를 봉헌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사진은 81년 1주기 추모 미사 모습이다.
남동성당
남동성당은 5·18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성당이다. 80년 5.18 항쟁 때 당시 남동성당의 김성용 주임신부가 광주를 탈출해서 서울로 올라가 광주의 실상을 알렸다. 5·18 당시 수습대책을 논의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 일을 계기로 남동성당은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저항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5월 항쟁 희생자 추모 미사를 이어오면서 '5·18 기념성당'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남동성당은 1949년 12월 들어섰다. 지리적으로 전남도청과도 가까워 5·18의 한가운데에 섰다. 5·18 이전부터 도청 앞과 금남로 일대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 거리 행진 등을 함께했다.
5·18 기간엔 지역의 인사와 성직자들이 만나서 대책을 협의하는 장소로 이용됐다. 천주교 인사들과 홍남순 변호사 등이 전투교육사령부를 방문해 협의한 결과를 놓고 대책을 논의했던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