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더이상 초등학교에 갈 수 없게 됐다.
송주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2월 말 대구를 덮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갑작스레 개학이 연기됐고, 새로운 담임선생님과 친구들의 이름을 온라인 공지를 통해 알았다. 담임선생님과는 전화통화로 인사를 나누었고, 새 친구들의 얼굴을 본 건 그로부터도 한 달 뒤. 그것도 온라인을 통해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한동안 아이는 편안해 하는 것도 같았다.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 일상에 아이가 자유로워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딱 한 달을 보낸 지난 3월 말. 아이는 대뜸 이렇게 말했었다.
"엄마. 이제 진짜 학교 가고 싶다. 집에만 있으니까 뭘 해도 재미가 없고 학원에라도 좀 갔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가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겠네."
잃고 나면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말을 아이도 실감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빌었건만
그 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잠시 수그러들자 아이는 학교에 갔다. 여름방학 무렵 이 곳 대구의 코로나는 상당히 잠잠해졌고, 학교에서 급식도 먹고 올 만큼 아이들의 생활이 조금씩 정상화되고 있었다. 그러자 스멀스멀 기대감이 올라왔다.
"다른 6학년 형들이 했듯이, 우리도 졸업여행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학교 오케스트라 하는 친구들은 연주 연습하던데 이대로 가면 연주회도 할 수 있겠지? 그 친구들은 진짜 오래 준비해왔는데 안 하면 너무 아쉽잖아."
아이들의 이런 대화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간절히 기도했었다. 제발 이대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그러들어서 초등학교 마무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2차 유행이 있었을 때도 대구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확진자 0명을 찍은 날도 많았고, 그럴 때마다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그 때만 해도 오케스트라를 하는 친구는 12월에 연주회 날짜를 잡았다며 기뻐했고, 아이는 꼭 가서 응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3차 대유행이 닥치고야 말았다. 바이러스는 다시 이곳 대구도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왔다. 명실상부한 겨울 날씨가 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력을 더욱 확대했다. 아이들의 기대에 찬 대화는 거기서 끝이 났다.
학교 측에선 현장학습을 비롯해 잡아 놓았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오랫동안 연습한 오케스트라 동아리 친구들의 연주도 무관중으로 진행됐다. 친구들은 텅 빈 관중석을 앞에 두고 연주를 했고, 우리는 동영상으로 연주를 보며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주일에 두 번이라도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거였다. 아이는 집에만 있으면 소화도 잘 안되고 답답한데 학교 가는 날은 밥도 맛있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이마저도 끝이 났다. 아이는 23일 아침 "이제 학교 교실에서 친구들 만나는 것도 내 책상에 앉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라며 가방을 메고 손에는 친구에게 줄 선물을 들고 학교에 갔다.
초등학생으로서 등교하는 마지막 아이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짠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했을까? 아니 대화도 거의 못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눈길을 주고 받았을까?
어쩌면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채 헤어진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이지만, 이 지독한 코로나 바이러스와 상실을 함께 겪어낸 동지들이기에 더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 아이들이 "그 때 말이야~" 하면서 즐겁게 추억하는 날이 빨리 올 수 있기를 마음 다해 바라본다.
부디 아이들이 이 갑작스런 이별을 잘 견뎌내길! 마지막 등교를 이미 마친, 아니면 곧 마지막 등교를 하게 될 모든 졸업하는 아이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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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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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교에서 온 알림톡,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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