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왼쪽)와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가운데),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상황이 이렇게 되니 나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법학과를 나오고 사법고시를 공부하며 익힌 법 지식을 오랜만에 써봤다. 민법 제758조의 공작물의 설치 또는 보존의 하자에 대한 소유주와 점유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하고, 관련한 판례를 간단히 정리해 보냈다. 그제서야 건물주는 '미안하다'는 이야기와 병원치료비 등을 줬다.
법이 약자의 편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법을 통해 최소한으로 지킬 수 있는 권리들이 많다. 또 타인에게 끼친 손해에 대해 정당한 경제적 보상을 하도록 하고, 합당한 형벌을 가해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한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법이 멀다. 이미 있는 법도 법조인이 아닌 이상 알고 있지 못하고,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전태일이 법상 정해진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도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는 현실에서 노동법을 공부하며 "내게 대학생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좋겠다"란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24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는데 평균 450만원 벌금일뿐
노동자들의 현실은 2020년도 녹록지 않다. 매년 240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어간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에 대규모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평균 450만 원의 벌금으로 '퉁' 치고 있다.
혹여라도 재해 사망자가 발생하더라도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시키면서 비용을 줄이는 게 기업 대표들의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이다. 지난 10일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사망한 고 김용균씨의 2주기였지만 정기국회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2021년 1월 8일)에는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본안 그대로 통과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국내 30개 경제단체는 "헌법과 형법을 크게 위배하면서까지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가혹한 중벌을 부과하려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의 제정에 반대한다"면서 지난 16일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주요 경제단체들이 특정 법안에 대해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처럼 450만 원 벌금으로 퉁 치고 싶은 경제계 대표들의 마음이 일견 이해는 된다. 당신 자녀들은 김용균씨처럼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처참하게 목숨을 잃을 일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