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4시 37분께 경기 군포시 산본동 25층짜리 아파트 12층에서 불이 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30여분만에 꺼졌다.
연합뉴스
지난 1일 경기도 군포시의 한 아파트 12층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 불이 나 작업자 두 명이 숨지고 옥상으로 대피를 시도하던 주민 세 명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참사가 있었다. 이번 사고는 최근의 대단지 아파트 화재로는 보기 드물게 인명피해가 많았는데 그 과정을 살펴보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안타까운 사고였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아이러니하지만 꼭 챙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옥상으로 대피하려고 한 주민은 모두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고 집 안에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린 주민은 모두 생존한 것이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린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화재가 발생한 호실의 바로 위층에 살던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를 통해 현관문이 계단실과 바로 맞닿아 있는 예전에 건축된 아파트 주민들은 불이 났을 때 연기가 가득 차 있는 계단으로 섣불리 대피를 시도하기보다는 집안에서 소방 구조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공간과 계단실이 방화문으로 분리되어 있는 요즈음 아파트들은 화재시에 그 방화문만 제대로 닫혀 있다면 층수에 상관없이 계단으로 대피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소방청에서 벌이고 있는 '불나면 대피먼저' 캠페인을 '우리 집 불나면 대피먼저'로 그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위험물 사업장 등 공적 책임이 일부 강조되는 곳에서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진화를 우선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수 있겠고 이번 화재에서 볼 수 있듯이 아파트 화재에서 불이 난 곳보다 위층 세대의 경우 연기가 가득 차 있는 복도로 대피를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화재에서 불이 난 아파트 세대와 현관문을 마주한 바로 옆 세대로 20여 분 만에 불이 옮겨붙은 것을 보면 화재 세대에서 현관문을 열어 둔 채 공사를 하다가 그대로 대피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집에 불이 나 서둘러 대피하다 보면 출입문을 닫을 경황이 없는 게 보통이겠지만 화재 시 출입문을 닫고 대피하는 작은 행동이 피해를 줄이고 이웃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황에 빠진 대피자도 알기 쉽게 비상구 표시 달아야
그런데 이 글의 요점은 다른 데에 있다. 옥상으로 대피를 시도하신 분들이 돌아가신 과정이다. 화재가 난 아파트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맨 꼭대기 층에 엘리베이터 기계실이 있다. 옥상으로 나가는 비상구는 이 엘리베이터 기계실 바로 아래층에 있는데 이 옥상 비상구의 상단 높이가 150cm 정도밖에 되지 않고 문턱도 높아 다 큰 어른이 이 문을 통과하려면 머리를 수그리고 다리를 들어 웅크려 지나가야 하는 쪽문이다.
물론 여느 비상구처럼 문 위쪽 천장 가까이에는 비상구 유도등이 붙어 있었지만 불이 나 복도 상부에 연기가 가득 차 있고 대피자가 정신적 공황에 빠진 상황에서는 비상구라고 인식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론적으로 당시 옥상으로의 화재 대피를 시도한 주민 세 명 모두가 이 옥상 비상구를 지나쳐서 문이 잠겨져 있는 엘리베이터 기계실 앞에 질식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비상구에는 천장 가까이 설치하는 유도등에 더해 문에다가도 큼지막하게 비상구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붙여 놓는 것이 어떨까? 노랑과 연두 형광색 빗금을 번갈아서 네모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안에다 문을 향해 달려 나가는 녹색의 사람 그림(비상구 그림문자)을 꽉 차도록 그려 넣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면 지금보다는 화재 대피자가 비상구를 찾기 쉬워지지 않을까? 아무리 공황에 빠진 대피자라 하더라도 도저히 지나칠 수 없을 만큼 시인성 좋게 비상구 표지를 만들어 놓았다면 이번 같은 안타까운 사고는 없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