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우편함을 다룬 지식채널e 영상.
ebs
삼청동 돌담길에서 마주친 노란 우체통
서울 삼청동 덕성여고로 이어지는 율곡로 돌담길을 걷다 보면 노란 우체통 하나를 마주치게 된다. 우체통 왼편에는 검은 안내판이, 오른편에는 종이와 펜 그리고 손 세정제가 든 반투명한 상자 하나가 놓여있다. 이 비밀스러운 노란우체통의 이름은 '온기우편함'이다.
고민과 함께 답장받을 주소를 적어 우편함에 넣으면 온기우체부들이 편지를 수거해 읽고 손글씨로 답장을 보내준다.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된다. 온기우편함은 현재 삼청동을 비롯해 덕수궁 돌담길, 노량진 고시촌, 어린이대공원 등 총 12곳에 설치돼 있다. 4년 전 세워진 온기우편함은 지난 12월 2일 기준, 총 8543통의 답장을 보냈다.
우정사업본부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일반통상우편물(서신) 접수 물량은 10년 전에 비해 35% 가량 줄었다. 우체통도 2004년 3만여 개에서 2018년 1만여 개로 줄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꿋꿋이 서울 곳곳에 우체통을 짓고 손편지를 보내고 있는, 비영리단체 온기우편함 운영자 조현식 대표를 지난 11월 17일 인터뷰했다.
마음 방역관, 조현식 대표를 만나다
- 온기우편함을 만들기 전까지 어떤 꿈을 꾸던 청년이었나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제가 할머니께, 부모님께 그리고 수많은 인연들에게서 받았던 소중한 마음들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 막연했던 꿈을 온기우편함으로 실현하고 있어요."
- 온기우편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주변 반응은 어때요?
"처음에는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말리시거나 경제적인 부분을 걱정하셨어요. 저도 그런 고민으로 망설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4년간 수천 통의 고민 편지에 손으로 하나 하나 답장을 하며 이 일이 우리 사회에 따뜻한 위로를 전해줄 수있는 가치 있는 일임을 확신하게 됐어요. 이제는 주위에서 응원도 많이 받아요. 주변의 걱정 어린 말씀, 응원의 말씀은 이 일을 지속하는 힘이 되죠."
- 타인을 위해 고민하는 일을 하지만, 정작 본인의 고민은 어떻게 헤쳐나가나요?
"제 마음과 대화해요. 사실 고민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면에 있을 때가 많아요. 외부 상황이 저를 머뭇거리게 하기보다 스스로 제 길을 의심한달까요. 고민으로 마음이 힘들 때면 먼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스스로에게 물어요. 그 후 어떤 점을 수정하고 보완할지 생각하죠. 그렇게 고민을 헤쳐나가고 있어요."
- 받아 본 고민 중 사회적 구제안이 필요하다고 느낀 고민이 있었나요?
"우울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있으면 좋겠어요.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처럼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오기도, 사라지기도 하죠. 실제로 많은 분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서 비롯된 우울감을 편지에 토로하세요. 코로나 시대에 사회 방역도 중요하지만 '마음 방역'도 함께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 타인의 고민을 듣는 것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나요?
"보통 고민편지 한 통에 1시간 정도를 들여 답장을 쓰는데요. 고민 하나 하나 깊은 생각 끝에 답장을 해드리기 때문에 감정 이입이 큰 편이에요. 그래서 온기우체부님들과 모여 서로 안부를 묻고 고민 나누는 시간을 가져요. 편지로 다른 이의 고민을 듣지만 저희의 고민도 서로 나누는 거죠. 그렇게 저희 마음에 먼저 온기를 채워 그 힘으로 답장을 쓴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