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경제에 따라 말을 줄일 수는 있지만, 아무 말이나 다 줄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호철
사람은 누구나 말을 할 때 힘을 덜 들여서 소리를 내려 한다. 이른바 '발음 경제'다. 자음과 모음을 줄여서 발음하는 '축약'도 그런 노력의 하나다. 두 개의 소리(음운)가 합쳐져서 하나의 소리(음운)가 되는 축약은 자음과 모음에서 다 일어난다.
예사소리인 'ㄱ, ㄷ, ㅂ, ㅈ'이 'ㅎ'을 만나 거센소리인 'ㅋ, ㅌ, ㅍ, ㅊ'로 바뀌는 '거센소리되기'가 '자음 축약'인데 '좋고[조코]', '잡히다[자피다]', '옳지[올치]' 등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음 축약'은 모음 두 개가 줄어서 한 모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사이'가 '새'로 주는 '간음화'(단모음 둘이 합쳐져 단모음이 되는 것)나 '그리어'가 '그려'로 줄 때 단모음 둘이 줄어서 이중모음이 되는 게 모음 축약이다. 이 음운 현상도 물론 발음을 쉽게 하려는 데서 빚어진다.
자음 축약은 음절 수가 줄지는 않아도 소리가 줄어서 발음을 편하게 하는 정도지만, 모음 축약에서는 음절이 줄어서 발음하는 데 드는 노력이 확실하게 줄어서 경제적이다. 모음 축약이 일상 언어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다. '가려'로 써도 되는데, 일부러 '가리어'라고 쓰지는 않으니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말을 줄여 쓰는 데는 비상한 능력을 보여 준다. 특히 문자로 대화하는 통신에서 비롯한 줄임말은 거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미안해'를 '먄해'라고 쓰고, '안녕하세요'를 '안냐세요'로 쓰는 일은 이미 고전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언어 파괴라며 우려하기도 하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이를 공식 문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들은 언어 형식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언어의 균형을 유지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