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굴비의 전형. 조기를 염장해 말리면서 몸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데서 '굴비'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이돈삼
하지만 칠산 앞바다에 모래가 쌓이고, 어업이 대형화·상업화되면서 더 이상 영광에선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 참조기가 칠산바다로 올라오기 전에 남쪽에서 모두 잡아버린 탓이다. 지금은 추자도 인근 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법성포로 가져와서, 염장하고 말려서 굴비로 만들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밥도둑'의 명성을 지닌 영광굴비다. 그 명성의 지원지가 법성포다. 참조기를 소금으로 절여서, 법성포의 바닷바람에 말린 것을 으뜸으로 친다.
딸을 왕비로 들여서 권세를 누렸던 이자겸이 법성포로 귀양 와서 왕에게 진상하면서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서 '굴비(屈非)'라고 써서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실은 조기를 염장해서 말리면, 몸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진다. 이 모습을 보고 구부러진 조기라는 의미로 '구비(仇非)'라고 했던 것이 굴비로 변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칠산바다에서 잡힌 조기를 사려는 상인들이 전국에서 모여들면서, 법성포가 북적거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남해 물길의 중심에 자리잡은 영광이 크게 대접받은 시대도 그때였다. 법성진성이 설치되고 법성창이 호남 제일의 조세창고로 성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