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시대, 미디어에 연결되는 삶의 방식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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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비대면 시대, 온택트 시대다. 이러다 보니 미디어에 연결되는 삶의 방식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최첨단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누구와도 자유롭게 소통한다. 초고속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와 TV도 스마트미디어 삶을 충분히 보장한다. 다양한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그 속에 쌓여 있다. 영화관에 가지 못해도 넷플릭스, 왓챠 등과 같은 미디어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적 콘텐츠를 감상하며 답답한 집콕 생활을 심심찮게 보낼 수 있다. 참으로 스마트한 미디어 환경이다.
스마트한 미디어 환경, 왠지 편치 않은 미디어 일상
하지만 우리 미디어 일상은 왠지 편치 않다. 잘못된 정보, 부정확한 정보, 조작된 정보, 왜곡된 정보가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걸러지지 않은 채로 유통된다. 시대적 가치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혐오와 증오 표현도 난무한다. 여기에 알고리즘이라는 시스템은 너의 생각과 유사한 의견만 보라고 확증편향을 부추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누구든지 이러한 부작용에 휘말리기에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불편한 미디어 일상에는 종편 채널도 단단히 한몫을 한다. 이들은 보수정권 시절 위헌적인 날치기법 속에서 억지로 출발했다. 태생부터 편법이고 특혜 속에서 성장하면서 방송산업 발전과 같은 탄생 명분과 달리 오히려 방송산업을 교란시켰다. 나아가 '아니면 말고'식 보도와 편향적 보도로 일관하면서 저널리즘 환경마저 망가트렸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대처는 미비하다. 방송 재허가 취소에 해당하는 명백한 불법이 드러나더라도, 재승인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구색 맞추기 조건을 달고 당연하게 재승인된다. 그러기에 방송 품질이나 불법성은 개선되지 않고, 그나마 있는 재승인 조건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이 자행된다. 관리·감독기관이 정치적 후견제의 틀에서 운영되는 구조 속에서 이들의 불편·편법에 대한 대처는 요원하다.
TV를 보더라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채널 시대라 수많은 채널이 있지만, 이리저리 돌려봐도 콘텐츠의 다양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그것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채널을 꽉 채우고 있을 뿐이다. 오락과 휴식이라는 순기능을 애써 생각하면서, 그저 어설픈 웃음을 지어야만 한다. 간혹 괜찮은 국내 제작 드라마나 의미 있는 시사·다큐 프로그램이 보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콘텐츠가 아쉬운 상황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를 보면서 부족함을 채워보지만, 이 역시 편치만은 않다. 늘어나는 경제적 비용, 무엇을 볼 지 고르다 시간을 보내는 넷플릭스 증후군,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는 자율성 상실, 재미를 넘어선 공공적 콘텐츠의 부재는 우리를 글로벌 미디어 기업 그들의 콘텐츠에 밤을 새우는 이용자이지만, 그저 가입자로서 파편화된 이용자로 위치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