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시체가 된 여자들> 스틸 사진. 영화는 죽은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문화적 집착을 범죄과학수사물을 통해 살펴본다
시체가된여자들
<시체가 된 여자들>은 크리스티 게바라 플래너건 감독이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시체 전문 배우'의 인터뷰와 여자 시체가 영화에서 재현되는 양상을 교차시키며 이어진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과학수사 드라마 CSI 시리즈의 시체 재현을 자주 대비시킨다. 수사물을 좋아하면서도 CSI 시리즈를 보지 못했다면, 관람객은 그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참혹한 가학을 견딜 수 없어 차마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는 걸 말이다. 드라마는 이 시리즈에서 과학 수사물이라는 장르성을 등에 업고, 여자의 가공할 시체들을 널브러뜨리며 참으로 많은 여자를 가혹한 고통 속에 가두었다.
배우라는 말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시체 전문 배우'라면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 이를 스터트맨처럼 전문 영역이라 여겨야 할지는, '시체 전문 배우'의 증언을 들으며 영화 말미에 이르면, 전문이란 말이 인권침해와 동의어가 돼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시체 전문 배우'가 된 것도 시체 역이 어떤 환경에서 어느 정도 강도로 이루어지는지 제대로 된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정말 불안했"다고 한다. 몇 시간에 걸친 고된 분장에 종종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거의 모든 인력이 남자인 현장에서 남자들의 눈길을 받아내며 불안을 안고 대부분 나체로 몇 시간이고 촬영에 임해야 했다.
먹고살기 위해 계속 시체 배우를 하게 되었을 때도, "한 번도 전체 대본을 보여주지 않아 자신이 어떤 상태로 시체 역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명백한 인권 침해의 현장이었다.
영화는 극 속에 재현되는 시체의 양태를 함께 조명한다. 재현되는 각각의 시체는 어쩌면 이리도 각각 적나라하게 참혹할 수 있는 것일까. 최악의 고통을 당하다 죽은 몸의 재현인지라, 시체 역의 배우는 물속에 잠겨 호흡이 곤란한 채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흙 속에 파묻혀 꼼짝할 수 없는 데다 일부러 기어 다니도록 배치한 벌레의 침입까지 참아내야 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그로테스크한 시체의 재현을 해내기 위해, 시체 배우들은 매번 누구도 그의 안전을 돌보지 않는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해야 했다. 인터뷰 속 '시체 전문 배우'는 현장에서 늘 "상자에 갇혀있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극 중 진저리치던 여자들의 시체를 떠올려 본다. 문득 그 시체 역을 했던 배우들의 고독과 고통, 그리고 시체와 한 몸이 되어 살해라는 극단의 소외와 고통을 함께 겪는다는 것이 어떤 감정일지를 상상해 본다. 누더기처럼 꿰매어진 영화 속 그를 보고 참았던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통곡을 삼키는 눈물이 흐른다. 죽은 몸이 하도 가엽고 무서워 공포로 질식할 것 같았던 그 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채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기만 속에 숨겨둔 애도를 이제야 보낸다. 영화 말미에 '시체 전문 배우'가 슬프게 던진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시체가 되어 보고서야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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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되고서야 그녀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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