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오른쪽)과 방송인 김어준씨(왼쪽).
노회찬재단=이상엽작가
노회찬의 말이 '어록'으로 묶여지며 핫하게 떠오르던 2004년 어느날. 정운영과의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정운영, <우리 시대 진보의 파수꾼 노회찬>, 랜덤하우스중앙, 2004, 142쪽).
정운영 : "노회찬 어록이 생길 만큼 언어에 탁월한 감각을 가졌는데 선조의 유산입니까, 피나는 훈련의 결과입니까?"
노회찬 : "생활 속에서 저절로 습득된 결과입니다. 그리고 관찰력, 분석력, 상상력의 발전적 조합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생각을 하는 수단이고 동시에 그것을 전달하는 수단이지요. 전달 대상에 대한 관심, 전달 그 자체에 대한 의지가 높을 때 전달 수단도 발전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풍자 화술의 달인' 노회찬의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특별한' 말글은 이른바 '노회찬 어록'으로 모아졌다. '삼겹살 불판'으로 상징된 노회찬 어록의 탄생 과정에 대해 함께 추적해보도록 하자.
어록의 탄생
"17대 총선 성공의 최대 공신은 단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던 노회찬 사무총장이다. 16대 대선 때도 민노당의 선거대책을 총괄지휘했던 그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탄핵정국의 영향으로 당 지지도가 떨어지자 TV토론을 통해 이른바 '삼겹살 판갈이'론을 역설, 지지도를 다시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는 물론 미디어의 속성과 잘 맞아떨어진 측면도 없지 않지만 민노당 스스로 적극적인 TV토론 참여를 통해 '정책정당 이미지'를 알리려 했던 전략 때문에 가능했다."(김진수 기자, '민주노동당의 정파, 색깔 그리고 파워', <신동아>, 537호, 2004, 5월호).
정치인 노회찬의 이름 석 자가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였다. 그 시작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사무총장으로 출연한 TV토론을 통해서였다.
2004년 1월 9일 오후 7시 문화방송 본사 회의실. 노회찬은 '언론노조 중앙집행위 및 민주언론실천위 합동수련회'에서 '17대 총선과 노동조합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을 하면서 아쉬운 심경을 담아 비판한다.
"9시 뉴스에서 매일 10초씩 나오면 민주노동당은 10명 당선된다. 1년 내내 30초씩 나오면 30명 당선되고 120초 나오면 120명 당선된다. MBC 100분토론은 지난 6개월 간 한 번도 민주노동당의 출연을 허용하지 않았다."
일주일 후인 2004년 1월 15일 노회찬은 민주노동당 중앙선대본부장 자격으로 <MBC 100분토론>(사회 손석희)에 참석한다. 두 달쯤 뒤의 "삼겹살 불판" 발언에 가려져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사실 이날이야말로 '노회찬 어록' 탄생의 조짐을 보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