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참깨결국 코로나 19 재확산으로 유차원에 갈수 없게 되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염원한다.
이복희
올해 초입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잠식되지 않고 12월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전염율이 높아지고 단계가 격상되면서 이야기할머니 활동이 전면 중단되었던 1학기, 지역별로 활동을 재개한 곳도 있었지만 1단계가 되면서 10월이 돼서야 첫 활동을 시작한 지역도 있었다.
그동안 군산은 청정지역이라 할 만큼 활동에 큰 제약이 없었기에 틈틈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활동을 중단하기도 하고 진행하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교실에서만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실로 가기 전에 쉬는 시간이면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그 작은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은 아이들의 영롱한 눈빛들이 은하수 별무리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친구들과 거리두기, 책상과 책상사이 거리두기를 해야만 했다. 작은 거인들의 무리를 섬처럼 만들어놓은 듯했다. 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는 방침에 따라야 했기에 내 목은 갈라져 물은 필수였다.
그래도 좋았다. 아이들을 볼 수 있었기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슬퍼하는 표정, 신기해하는 표정, 옛 조상님들이 사용한 단어가 나오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부끄러워하고 즐거워하면서 방귀와 똥과 요술이란 단어만 나와도 깔깔거리는 동심들을 볼 수 있어서였다. 그러다 다시 코로나19가 재확산되어 휴강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1년을 보냈다. 몇 달 동안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던 시기를 보내고 나니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었다. 이삿짐에 파묻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만날 수 있을 때, 활동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휴강하고 싶은 갈등을 이겨낼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교실에서만이라도 볼 수 있었던 아이들조차 볼 수 없었던 여름이 지나고 10월 중하순경 1단계가 발표되면서 유치원을 찾아갔다. 운동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아이들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가을 하늘만큼 높고 힘차게 게임을 하고 공을 차면서 저학년 고학년 초등학생들이 나와서 체육을 하고 있었다. 내 자식들이 아닌데도 너무 보기 좋았다. 가슴이 설렜고 너무 반가워 눈물이 다 나왔다.
힘차게 뛰어놀아야 할 생명의 꿈나무들이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앉아 재잘거리던 소리만 들었는데 이제는 흙을 밟으면서 힘차게 발돋움하면서 뛰고 달리고 넘어지고 잡으면서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군대 간 아들, 첫 면회 가서 만났던 그날의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또, 어느 순간 아이들이 사라졌다. 쉬는 시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힘차게 운동장을 향해 질주하던 아이들, 뛰고 넘어지고 공놀이 하며 서로 자기가 차겠다고 온몸 사리지 않고 공을 차던 아이들, 골인시킨 뒤 와~ 하면서 큰소리로 환호하던 아이들, 서로 골 한번 넣어보겠다고 밀고 당기면서 활기차게 달리던 아이들, 땅따먹기 하는 아이들과 삼삼오오 군것질 거리를 사러나가던 아이들, 계단에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오르락내리락 하던 싱그럽고 귀여운 아이들... 그 아이들이 사라진 운동장을 보면서 햇살처럼 밝은 젊음들이 골방에 갇혀버린 이 시국이 못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살아 움직여야 하는 운동장은 흙과 바람과 햇살만 텅 빈 공간을 지키고 있다.
"할머니 걱정이에요. 아이들이 안 나오기 시작했어요. 다음 주에 다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못내 아쉽고 걱정이 되었는지 선생님이 따라 나오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청정지역이라 할 만큼 방역 수칙이 잘 지켜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익산을 시작으로 군산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상승하면서 다시 지역 전체가 멈추게 될까 우려스럽다.
오늘도 코로나19는 자연 속에서 함께 성장해야하는 아이들을 집이라는 작은 우주 공간에 밀어넣었다. "나 하나쯤이야" 하며 추구한 편리함이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를 지키고, 서로를 지키고 지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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