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중순, 강진에서 만난 멀구슬나무 꽃이다.
김현자
멀구슬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혹은 남부지방 곳곳, 사람 사는 곳 가까이 자라는 나무다.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6월에 연분홍과 연보라색이 조금 스민 듯한 꽃잎을 펼친다.
고창 군청 앞에 200년 된 멀구슬나무(천연기념물 503호)가 있다. 강진과 보성에서도 봤던 멀구슬나무다. 제주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자라는 그런 나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이 구태여 멀구슬나무 꽃을 제주도와 연결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지 제주에 이게 특히 많기 때문일까?
지금이야 많은 사람이 여행지 제주도를 선망하지만, 옛날엔 유배의 지역이었다. 지금처럼 피임이 쉽지 않았던 시절, 제주도 여성들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멀구슬나무 줄기를 달여 먹어 임신을 중단했단다. 제주를 먹여 살린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임신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을 것이다. 멀구슬나무는 제주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을 간직한 그런 나무인 것이다.
오동나무는 딸이 태어나면 심어 키워 그 딸이 시집갈 때 장을 짜주던 나무로 많이 알려졌다. 제주도에서는 멀구슬나무가 오동나무 같은 쓰임새를 대신했다고 한다. 살충제나 구충제로, 피부염을 다스리는 약으로도 유용하게 쓰였다는 멀구슬나무다. 물자도 귀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집 가까이 심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제주도에 흔한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을 알고자 여행하기도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행지는 맛집이나 멋진 풍경, 명소 등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만으로 한 지역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멀구슬나무에 얽힌 제주도 사람들의 사연처럼, 그 지역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땅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식물도감'이다.
두 눈이 있느냐
개불알풀꽃 들여다보아라
-'식물도감'에서
코로나로 모두 힘들다. 지난날 오랫동안 자영업자로 살아봤기 때문일까.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볼 때면 오래전 자영업자로 힘들게 버텨내야만 했던 시절이 겹쳐 떠오르며 '지금 오죽들 힘들까?'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맺히곤 한다.
그만큼 힘들었다. 얼마 전의 힘들다는 하소연은 차라리 엄살에 불과했다는 자책까지 들 정도로 악재가 되풀이됐다. 설상가상, 운영 중인 가게마저 적자였다. 그럼에도 경제가 풀리면 좀 나아질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접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던 2006년 1월, 간월도와 태안반도를 여행하다 어느 길가에 올망졸망 피어난 개불알풀꽃 무리를 만났다. 개불알풀꽃은 대표적인 봄 풀꽃이다. 그런데 한겨울에도 남도처럼 따뜻한 지역 양지바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하다.
오죽 절실하면 짧은 겨울 햇볕을 바라기로 해 꽃을 피웠을까? 겨울에 피어난 개불알풀꽃이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우리 처지와 겹쳐지며 위로가 되었다. 겨울 혹독한 바람 속에 저렇게 작은 풀도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주저앉으면 안 되지, 용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