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8월12일부터 실제 적용되는 시행령의 뚜껑을 열어보니 수상한 내용이 포함돼있었습니다. 문제의 조항은 2조 23항 1호의 별표 1입니다. 신설되는 업종인 '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수집·분석·판매할 수 있는 신용정보가 무엇인지 정의한 부분입니다.
조선혜
살펴보면 전자화폐 충전금액, 전자자금 송금내역, 포인트 금액과 종류·내역, 카드 결제내역 정보, 주문내역 정보, 환불내역 정보 등이 '신용정보'에 포함돼 있습니다. 물론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카카오페이 등 전자화폐에 얼만큼 충전했는지, 신용카드 포인트는 어디에 썼는지, 신용카드로 어떤 물품을 샀는지, 환불은 얼마나 했는지에 대한 개인정보를 거래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시민사회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박순장 소비자감시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주문내역 정보' 항목이 가장 문제"라며 "(본인신용정보관리업에서 제공한 정보를 통해) 카드회사나 은행들이 소비자가 구매한 물품, 사이즈나 색상, 환불 여부 등까지도 볼 수 있게 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초 입법예고안에는 없었던 내용입니다. 금융위 금융데이터정책과 관계자는 "당시 마이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구성된 실무협의단(워킹그룹)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에 필요한 정보에 대해 협의하던 중이었는데 입법예고 이후 합의가 이뤄져 (주문내역 정보 등이) 실제 시행령에 추가됐다"고 해명했습니다. 해당 워킹그룹에는 금융회사, 핀테크기업, 온라인쇼핑몰 등이 참여했고, 학계나 시민단체 등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법 개정 전 진행된 공청회 등에서도 이런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이 관계자는 "신용정보법 관련 공청회는 여러 차례 했다"며 "하지만 공청회에선 법의 큰 테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 자세한 부분에 대해 다룰 수는 없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입법예고에도, 공청회에도 없던 내용
쿠팡에서 어떤 물건을 샀고, 얼마나 환불했는지로 개인의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정보를 한 곳에 모은 뒤 금융회사와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의 박순장 팀장은 "한마디로 소비자를 홀딱 벗겨놓겠다는 얘기"라며 "인터넷으로 물품을 구매하면서 약관을 모두 읽는 경우는 드문데, 이에 동의하게 되면 개인정보가 상당 부분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본인신용정보관리업 관련 기업은 소비자의 온라인쇼핑몰 주문내역 정보 등을 넘겨 받을 때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정보 제공에 대한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에도 보험상품, 온라인 사이트 등에 가입할 때 깨알 같은 약관을 모두 읽고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다만 금융위는 기존 제3자 정보제공 동의서 양식과 별도로 직관적이고 가독성 및 가시성이 높은 신용정보 이동권 행사 동의 양식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또 금융위 금융데이터정책과 관계자는 "정보를 이동시킬 때마다 소비자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본인에게 불리한 정보일 경우 제공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이번 신용정보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박순장 팀장은 "헌법 2조와 17조에는 비밀을 보장할 권리, 편안하게 생활할 권리 등이 명시돼 있다, 이번 개정안은 국민 사생활 보호와 관련한 헌법 위반 사항"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현재에는 생년월일, 주소 등만 노출되고 있는데 시행령이 본격 적용되는 시점부터는 일반 국민들의 생활이 모두 노출될 것"이라며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이런 정보가 유출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정보가 유출될 경우 소송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데, 현행법에서는 여전히 유출 과정에 대한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현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 구체적 주문내역은 가리기로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