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뷰티 인사이드> 스틸 이미지.
(주)용필름
꾸미지 않은 모습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단단함이 느껴졌는데, 정말 오랜 요가와 명상으로 마음이 단련된 것 같았다. 연예인이, 그것도 초로의 여배우가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하려는데, 염색은 물론 보톡스도 맞지 않은, 주름살 가득한 맨 얼굴을 내놓고 화면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너무나 신선했다. 무엇보다 정말 멋있었다. 그것도 궁극의 외모지상주의가 활개를 치는 동안천국, 무려 대한민국에서!
그랬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갈 용기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모두들 '동안'이 되려고 노력하는데 나만 혼자 주름살을 늘려가도 되는 것일까? 나만 늙으면 어쩌지? 그 쓸데 없는 걱정이 보톡스와 이별하는데 장애가 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었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내 눈에는 늙지 않는 뱀파이어 여배우보다 눈빛이 살아 있는 초로의 여배우가 더 예뻐보였는데 말이다.
사실 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사람의 외모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마주 앉은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말투를 가졌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이 고상하게도 천박하게도 보일 뿐, 외모로 호감을 느낀 적은 없다. 아무리 곱고 예쁜 얼굴을 가졌다 해도 시종일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댄다든지, 고위층이나 부유층과의 관계를 과시한다든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은근한 자랑을 늘어놓는다면 나는 단박에 그 사람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이왕이면 단박에 정나미가 떨어지는 사람보다 곱씹을수록 기분이 좋고, 예의바른 사람, 뭔가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매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좋았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온 날은 기분이 좋았고, 외적인 아름다움은 그런 만족감에 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더이상 보톡스를 맞지 않는다. 거리두기와 마스크로 얼굴을 내놓고 다닐 일이 없다는 것도 한몫했지만, 아마도 젊어보인다는 말을 듣기 위해 몸부림 치는 데 흥미를 잃어서일 게다. 젊어 보인다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상 그것을 위해 바등거릴 시간이 아까워졌으니까.
나는 세월이 내 얼굴에 남겨놓는 흔적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다만, 늙어가는 얼굴의 주름만큼 나의 품격 또한 켜켜이 쌓여가길 바란다. 그래서 종내에는 멋진 노인이 되길. 그러기 위해 나는 많은 좋은 책을 읽고, 정갈한 음식을 먹으며, 상쾌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움직일 것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매끈한 얼굴 대신, 푹 꺼진 볼과 사방팔방 깔린 잔주름으로 멋진 웃음을 가진 채 나이드는 사람으로, 폼나는 옷을 입고 멋진 가방을 든 친구보다, 텃밭을 일구며 재미를 붙였다는 친구의 따뜻함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이들어 갈 것이다. 노화와 싸우지 않는 멋진 삶, 나는 그런 나의 잔잔한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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