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7일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과 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전국대학생 집회 사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그때와 다르게 지금 대학에는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규정이나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성평등센터, 인권센터 등 전담기구가 존재한다.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여성단체 등 대학 외부에도 고충을 호소하거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들과 기구들이 존재한다. 성폭력이 교수의 인사나 학생의 학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비위가 아니었던 1990년대에 비해 신고되거나 인정되면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으로 점차 자리 잡고도 있다. 모두 학생들과 피해자들의 지난한 목소리 내기와 운동의 성과다.
그러나 신고나 문제제기의 문턱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학원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발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도교수가 장학금 선정부터 학위 수여, 추천서 작성까지 대학원생의 일상과 생계, 진로에 전권을 발휘할 수 있게 관행화된 대학원 지도-교육 관계의 비합리성이 있다.
그래서 많은 대학원생의 성폭력 피해가 논문심사나 지도, 학회 참석 등 연구 진행을 명목으로 이뤄진 장면에서 발생한다. 지도교수의 성폭력으로 지도교수 변경을 하려 했더니 지도교수의 확인도장을 받아야 했던 상황의 난감함을 말하던 피해자가 있었다. 교수의 성폭력과 갑질을 신고했더니 연구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다른 학생들이 지도받을 수 없어서 학생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피해자도 있었다. 스스로와 타인의 학업에 불이익이 간다면, 과연 누가 쉽게 성폭력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우리는 성폭력을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조직 내 성차별 문제로서 '성희롱'이 가지는 특성은 바로 피해자가 동등한 조직 구성원으로 누려야 할 권리나 조건들이 박탈된다는 데 있다. 대학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배우고 연구하고 일할 권리, 학계에서의 진로를 설계하고 쌓아갈 가능성 말이다. 사건 공론화 이후, 성폭력 피해자로서 지지받고 제도적 지원도 받을 수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의 학업 진행에 대해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공부를 함께할 동료들은 없었다는 어떤 피해자의 말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많은 여학생이 피해를 겪거나 목격하면서 학계와 학문에 대한 열의와 애착을 상실한다. 'Harass(괴롭히다)'의 어원이 뜻하듯, 여기가 지긋지긋해진다. 그것은 다시 여성들의 학문적 능력 부족과 야망 없음으로 해석되어 경쟁-평가 체제로 서열화된 현 대학 구조에 부적합한 존재들로 규정하는 인식으로 굳어진다. "일은 여자가, 교수는 남자가." 어떤 좌담회에서 만난 한 대학원생이 한 말이다. 대학원을 굴리는 숱한 노동을 하지만, 학문적으로 인정받거나 보상받지 못하는 여성 대학원생의 현실을 간파한 표현이다. 떠나거나 작아지거나, 그 많던 여학생들이 지금도 만나는 갈림길이다.
2019년 공론화된 서울대 서문과 A교수 사건은 이런 학계의 성차별적 문화가 성폭력과 갑질, 연구비 횡령 및 연구윤리 위반이라는 대학 비리 종합세트를 어떻게 낳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술어술문학과'로 남성 교수들의 유흥과 안위를 위한 장으로 학과가 조직되면서, 그에 순응하는 남성 조교들과 강사들이 동원되며, "남편이 돈을 버는 여자 강사를 (수업에서) 제외"하는 행태들이 시도되었다. 남성 교수의 연구 실적을 위해 여성 대학원생이 해외 학회 참석과 논문 작성을 강요당하다 성추행 피해까지 입는 상황도 목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봉건적 가부장성과 신자유주의 대학 체제가 배타적이지 않음을 확인한다.
이러한 교수의 자의적 권력을 견제하는 대책으로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및 대학원생들은 대학 인권센터의 내실화 및 권한 강화, 징계위에의 학생 참여 등을 입법하려 노력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로서의 권리 인정, 양육과 병립 가능한 대학원생 교육·연구 환경 조성을 통해 임신하고 출산할 수 있는 몸, 기르고 돌보는 활동이 배제되지 않는 대학을 꿈꾼다. 대학을 성평등하게 만드는 조직화된 목소리와 제도만이 성폭력을 근절시키고 대학 민주주의를 완성시킬 것이다. 대학 성폭력은 대학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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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 성희롱 사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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