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네 한복판
이강진
호주의 뉴사우스 웰스(New South Wales)와 퀸즐랜드(Queensland)주 경계선에 님빈(Nimbin)이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이 동네에 특별한 관광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유적지가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특히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배낭족들이 많이 찾는 동네다. 흔히 이야기하는 집시풍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있는 호주 사람 대부분은 자그마한 동네, 님빈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님빈에 거주하는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반긴다. 자기가 님빈에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자동차를 태워주면 좋겠다고 한다. 님빈까지는 우리 동네에서 500km 가까이 되는 먼 거리다. 차를 태워주면 숙소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서로의 계산이 맞는다. 날짜를 잡았다.
오래전에 님빈을 가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생활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관광객으로 방문했다. 따라서 대충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님빈에 사는 사람과 같이 지내며 그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님빈 간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사람의 물음은 동일하다. 왜 하필이면 님빈에 가느냐는 질문과 함께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낸다. 집시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마리화나를 피는 사람들이 많은동네로 소문나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날이다. 평소 여행에는 챙기지 않는 손전등과 슬리핑백을 차에 싣는다. 외진 곳에 집이 있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선다. 네비게이션에서 안내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달린다. 두어 시간 운전하고 있는데 지인이 지름길로 가자고 제안한다. 국도이기 때문에 시간은 더 걸리지만 가보지 않았던 길도 좋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그라프톤(Grafton)이라는 동네로 들어선다.
그라프톤은 자카란다 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매년 자카란다 축제가 열린다. 2년전에 이곳에 와서 숙박하며 축제 구경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축제가 취소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와 상관없이 자카란다 나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라색 꽃을 도로에 흩뿌리고 있다. 동네가 온통 보라색이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가게에서 햄버거 하나 사 들고 강가에 있는 공원에 자리를 잡았다. 규모가 큰 클라렌스강(Clarence River)이 소리 없이 천천히 갈 길을 가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서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피어오른다. 조금 전에 잔디를 깎았기 때문이다. 넓은 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해결한다. 같은 음식이라도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